InterNet
2006. 9. 13. 12:42
0140이던가, 인터넷에 전화로 접속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접속이라니, 접속 자체가 환상의 세계였다. 당시 천리안의 파란색 초기 화면은 마치 새로운 우주 같았다. 그리고 2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제 그 환상의 세계는 더 이상 환상적이지 않게 되었다. 일상에 너무도 깊이 파고들어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거기서 파생되는, 조종되고 강요되는 관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할말이 좀 있지만 생략하고, 티스토리에 둥지를 틀고부터 Rss의 유용함에 눈뜨기 시작했다. 포털에서야 포털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 열심히 웃고 떠들고 하면 되지만[이걸 쓰다가 왜 디디알 판에서 화면을 보며 열심히 깡충깡충 뛰던 아이들이 떠오르는 거냐], 티스토리는 쥔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존재를 알 수 없다. 정말 매력적이다. 조금 외로우면 포스트를 발행으로 설정하면 되고, 아주 많이 외롭거나 왁자지껄 떠들고 싶으면 메타블로그를 이용하면 된다. 남들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싶으면, 가입하지 않고 Rss만 구독하면 된다.
넷에서 주로 구하는 것이 소통보다는 정보인 아주 이기적인 유저로서, Rss 기능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다. 즐겨찾기도 있지만, 그것은 방문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넘쳐나는 즐겨찾기를 어느 세월에 다 찾아다니며 업뎃을 확인할 것인가. 뉴스레터는 그나마 낫다. 하지만 모든 곳이 다 뉴스레터를 보내지는 않을 뿐더러 가입의 부담이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민번과 주소를 요구하는데,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든 곳을 다 Rss로 구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업뎃에 존재의 사활이 걸린 미디어 부분이 아니면 그럴 필요도 없다. 부족한 부분은 검색 기능이 커버해준다.
문득 물음 하나가 떠오른다. 이기적 소통이 소통이기나 한걸까, 하는.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자. 역사적으로 많은 것이 소통의 형식을 빌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방통행이었으니. 현재의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소통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볼일.
덧.
시작페이지를 위자드로 바꾸어 놓고 난 다음, 개인화되어가는 시작페이지 - 당신은 행복해 지고 있습니까? 라는 글을 읽었다. 개인화 경향을 행복과 연결시키는 질문인데, 깜찍한 질문이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풍요가 행복과 비례관계가 아님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조금 멀리서 시작한 게 아닐까 싶은 거다. 또한 시작페이지는 여러 가능한 시작페이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필요하면 클릭 한번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 가능성이 차단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따라서 이 질문에 너무 진지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나로서는, 개인화된 시작페이지는 일단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정보를 거부함으로써 짜증이 덜어진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에 이롭게 다가온다. 참, 이 페이퍼에 따르면 다음 말은 장자의 말이라는데 인상적이다.^^*
정말 능력있는 무능이다. 혹시 무위를 이렇게 표현한 것? 찾아봐야겠다.
이 점에 대해 할말이 좀 있지만 생략하고, 티스토리에 둥지를 틀고부터 Rss의 유용함에 눈뜨기 시작했다. 포털에서야 포털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 열심히 웃고 떠들고 하면 되지만[이걸 쓰다가 왜 디디알 판에서 화면을 보며 열심히 깡충깡충 뛰던 아이들이 떠오르는 거냐], 티스토리는 쥔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존재를 알 수 없다. 정말 매력적이다. 조금 외로우면 포스트를 발행으로 설정하면 되고, 아주 많이 외롭거나 왁자지껄 떠들고 싶으면 메타블로그를 이용하면 된다. 남들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싶으면, 가입하지 않고 Rss만 구독하면 된다.
넷에서 주로 구하는 것이 소통보다는 정보인 아주 이기적인 유저로서, Rss 기능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다. 즐겨찾기도 있지만, 그것은 방문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넘쳐나는 즐겨찾기를 어느 세월에 다 찾아다니며 업뎃을 확인할 것인가. 뉴스레터는 그나마 낫다. 하지만 모든 곳이 다 뉴스레터를 보내지는 않을 뿐더러 가입의 부담이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민번과 주소를 요구하는데, 어디다 쓰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든 곳을 다 Rss로 구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업뎃에 존재의 사활이 걸린 미디어 부분이 아니면 그럴 필요도 없다. 부족한 부분은 검색 기능이 커버해준다.
문득 물음 하나가 떠오른다. 이기적 소통이 소통이기나 한걸까, 하는.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자. 역사적으로 많은 것이 소통의 형식을 빌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방통행이었으니. 현재의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소통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볼일.
덧.
시작페이지를 위자드로 바꾸어 놓고 난 다음, 개인화되어가는 시작페이지 - 당신은 행복해 지고 있습니까? 라는 글을 읽었다. 개인화 경향을 행복과 연결시키는 질문인데, 깜찍한 질문이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풍요가 행복과 비례관계가 아님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조금 멀리서 시작한 게 아닐까 싶은 거다. 또한 시작페이지는 여러 가능한 시작페이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필요하면 클릭 한번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이 가능성이 차단되었을 때 비로소 행복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따라서 이 질문에 너무 진지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나로서는, 개인화된 시작페이지는 일단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정보를 거부함으로써 짜증이 덜어진다는 점에서 정신건강에 이롭게 다가온다. 참, 이 페이퍼에 따르면 다음 말은 장자의 말이라는데 인상적이다.^^*
"재주있는 자는 일이 많고, 총명한자는 걱정이 많은법, 무능한 자는 할 일이 없는고로 포식하고 한가히 놀러다닌다."
정말 능력있는 무능이다. 혹시 무위를 이렇게 표현한 것?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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