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eyes/issue 2004. 9. 12. 12:11
[특집2 독서교육] 발행월 : 96년 10월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하나

(주인됨을 길러주는 책읽기)


윤구병 / 농부,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



말은 곧잘 하지만 글을 깨우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는 이런 아이들을 문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문맹율이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한 나라의 문화가 선진이냐 후진이냐를 가름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글자를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그 사람이 유식하냐 무식하냐를 판가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인류 진화의 긴 역사에서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몇 천 년이 안된다. 글을 익히지 않고도 사람들이 문화 생활을 한 흔적은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민중문화도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그 문화가 글을 아는 사람 손에서 빚어지지는 않았다.

문자의 발생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새겨져 있다.

사회가 국가 단위로 통합되고 지역 공동체 사이에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글자를 만들 필요가 생겨났다. 글자는 때로는 전제 군주의 통치 편의를 돕기 위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장사꾼들이 서로의 기억을 못 미더워해서 만들어내기도 했다.

경제가 자연경제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통치자들이 백성들의 노동 성과를 폭력으로 제 몫으로 삼거나, 장사꾼들이 다른 지역의 정보에 어두운 순박한 사람들을 속여 중간 이문을 크게 먹을 필요가 있었을 때까지는 글은 통치자나 장사꾼들 사이에서만 서로 의미가 통하는 암호문같은 것이어서 일반 사람들이 모르면 모를수록 더 좋았다.

시대가 바뀌어서 한 나라 국민이 모두 일정한 정도의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절실해지면서 이른바 모두가 쉽게 배우고 익힐 글자를 선택하여 따로 학교를 만들어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영국이 국민들에게 열심히 글을 가르치고 책읽기를 권장한 이유는 뻔하다. 글을 몰라도 농사는 지을 수 있지만, 장사는 하기 힘들다. 또 글 모르는 사람을 채찍질하여 쟁기를 끌게 할 수는 있지만, 기계를 만들거나 그 기계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게 하기는 쉽지 않다.

나라 안을 식민화하고 내친 김에 해외에도 식민지를 만들려면 막강한 물리력인 군대나 경찰도  필요했겠지만, 물리력만으로 윽박 지르려면 통치의 비용이 너무 높아진다. 그래서 문화 통치가 필요한데, 문화 통치를 빠르게, 손쉽게 하는 데는 글자를 가르쳐서 글을 읽어 통치 집단의 뜻에 맞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보다 더 좋은 방안이 따로 없다.

이런 기초상식에 바탕을 두고 독서교육을 해야만 제대로 된 책읽기를 가르칠 수 있다고 본다. 무엇 때문에 글을 배우고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사가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 독서교육은 자칫 종살이 훈련에 일조하는 꼴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교육을 해야 하는 걸까.

독서교육의 첫단계로 어른이 쓴 글보다는 같은 또래나 언니들이 쓴 글을 읽어 버릇하도록 이끄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너 살 때까지의 가장 좋은 선생은 대여섯 살 난 언니들이라는 말을 상기하면 왜 그런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일반으로 아이들의 말이 갖는 형식틀을 모르고 쓰는 말의 빈도수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어른들의 말버릇을 말끝만 바꾸어 그대로 옮기는 일이 많은데, 이런 책들은 아이들의 감성과 사고의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와 곁들여 아이들에게 이야기, 특히 옛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좋다. 청각 체험이 어떠냐에 따라 시각 체험의 결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재미있게 주의를 기울여 듣는 체험이 쌓이다 보면 스스로 그 즐거움과 귀의 솔깃함의 근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많은 책을 읽힐 수 있을까에 관심두는 교사들에게는 쓸데없는 관심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읽고도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몇해 전 아이들의 논리적 사고 능력을 높인다는 구실로 아직 ꡐ형식적 조작‘ 능력도 생기기전인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ꡐ논리야……ꡑ시리즈 책들이 마구잡이로 권장된 일이 있을 때 나는 그 해독을 지적하고 논리에 연관된 책 백 권을 강제로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보다 『몽실언니』 같은 책 한 권을 읽히는 것이 아이들의 사고를 깊고 폭 넓게 만드는 데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독서교육에는 교사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간접 체험으로 직접 체험을 대신하려는 그림자 삶의 태도를 아이들에게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하고, 주인으로 커야 할 아이들을 누군가, 무엇인가의 종으로 길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뜻에서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읽은 책의 권수로, 또 비치된 장서의 양으로 독서 수준을 가늠하려는 무분별한 경향이 없지 않은데,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한 권의 책을 읽혀도 좋으니 제대로 된 책을 읽혀야 한다. 제대로 된 책이라는 말이 잘 잡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더 구체화해서 말하자면 한 권의 책을 읽히더라도 주인이 쓴 글을 읽혀야 하고, 손님이나 종이 쓴 글은 읽히지 말아야 한다. 꾸며 쓴 글은 대체로 죽은 글이고 고작해야 손님이나 종의 처지에서 쓴 글이라고 보아도 틀림없다.

아이들 가운데도 글을 꾸며 백일장 같은 데서 상을 받는 맛을 들인 아이들이 있는데, 그래도 아이들 글은 꾸며낸 죽은 글인지 본심이 드러난 살아있는 글인지 쓴 말투를 보고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쓴 글을 먼저 많이 읽혀야 한다는 말에는 주인이 쓴 글을 읽어야 스스로도 주인 의식이 생긴다는 뜻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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