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전은 소설 <천변풍경>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천변풍경>은 제목대로 서울의 청계천변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카메라로 찍듯이 묘사해나간 일종의 세태소설이다. 남정네들이 모여드는 이발소와 여인네들이 모여드는 빨래터를 주무대로 하여 일어나는 대소사들을 50개의 삽화로 그물망처럼 직조하였다."
"주색잡기에 골몰하는 재력가 민주사나 한약방 주인, 포목점 주인, 카페 여급 하나꼬, 결혼했다 친정으로 쫓겨온 이쁜이, 순박한 시골색시 금순이, 그리고 만돌어멈이나 점룡모친, 창수나 동팔이 등의 인물을 통해 축첩·결혼·선거·직업 등 서울 중인 및 하층민 토박이들의 삶과 생활풍속을 뛰어나게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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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없앤 오간수다리. 다섯개의 물구멍이 있어 이 구멍으로 죄인, 도둑들이 성안에 몰래 출입했다고 한다. |
과문한 탓인지, 해방후 청계천을 박태원 작가처럼 제대로 묘사한 작품을 아직 보지 못했다. 다만 천변 양켠에 다닥다닥 판자집이 밀집해 있는 흑백사진이 당시 고단한 청계천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판자집의 기둥들이 개천바닥에 말뚝처럼 박혀 있어 동남아 도시의 정크족 수중가옥을 보는 듯한 풍경이다.
그러다가 청계천은 사라져버렸다. 서민의 애환이 뒤엉킨 청계천은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여년 동안 복개공사를 거쳐 콘크리트 밑으로 감춰졌다. 그 위로 도로가 생기고 그 도로 위로 또다시 자동차 전용차로를 만들었다.
"엄마, 청계천은 어디 있는 개울이야?"
"글쎄, 청계산 밑에 있겠지 뭐."
".....?"
농담 같지만, 실제로 청계천은 서울시민에게 잊혀진 이름이었다. 웰빙시대를 맞아 등산인구가 급속히 늘다보니 서울 서초구의 청계산은 날로 유명해지는데 비해, 서울 한복판의 청계천은 시멘트에 덮여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불명의 하천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청계천도 '맑은 개울'이라는 실체는 없어지고 웅장한 고가도로 밑의 도로 이름에나 쓰이는 무의미한 호칭일 뿐이었다. 또 청계천 1가에서 9가에 이르는 도로 양켠은 공기가 탁하고 주변이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잊을 만하면 한번씩 텔레비전 환경고발 프로그램에서 청계천 밑을 탐사해 오물투성이의 탁한 물이 흐르는 시궁창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 화면을 보면 악취가 안방으로 밀려오는 듯했다. 그래서 '맑은 개울'이라는 청계(淸溪)의 본디 뜻은 사라지고 '썩고 더러운 지하개울'로 이미지가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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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장충단공원에 옮겨져 있는 수표교. |
옛날 청계천의 다리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다리 모퉁이에 가게가 있었다는 모전다리, 도성 안의 가장 넓은 다리로 대보름에 다리밟기의 풍습이 성행했던 광통교, 개화기에 유대치가 살았다는 장통방의 장통교, 임금이 자주 건너다니고 정월 연날리기의 중심이었던 수표교, 한양 도성의 일부로 임꺽정이 달아난 통로라는 오간수교 등이 한양 도성 안의 유명한 다리였다.
이 다리 가운데 오간수다리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그밖의 다리들은 광교에서 마장동 사이 청계천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모두 사라졌다. 오직 수표교만이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져 살아남았고 광통교는 제 자리에 남았으나 시멘트 더미에 짓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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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완공되면 세워질 맑은내다리 조감도. |
옛날 한양에는 청개천과 14개의 지천에 약 200여 개의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이름과 위치가 확인된 다리는 80여 개 정도라고 한다. 청계천 본류만해도 태평로 부근에서 중랑천 합류지점까지 모전교, 광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 태평교, 오간수교, 영도교 등 9개의 다리가 있었으며, 모두 뛰어난 조형미와 역사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청계천이 복원되면 그 위에 다시 22개의 다리가 놓인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꽃과 물고기가 있는 청계천, 그 꿈은 이루어집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처럼 정말 개천변에 아름다운 꽃이 무리지어 피고 피라미, 붕어, 잉어가 뛰는 살아 있는 개울로 다시 태어날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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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건설될 두물다리 주변 청계천 조감도. |
다만 앞으로 복원될 청계천의 수심이 30cm밖에 안된다는 게 좀 옹졸해 보인다. 깊이가 한 자도 안되는 개천을 개천이라 할 수 있을까. 명색이 개천이라면 아이들이 들어가면 수심이 키를 넘을까 말까 정도는 되어야 수상 생태계도 이뤄지고 자연 하천의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수심 30cm'라는 목표치를 들을 때마다 일껏 일었던 기대가 싹 가신다.
복원은 말 그대로 옛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는 것이다. 옛날 청계천이 살아 있는 개천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아이들이 멱 감던 시절에 깊이가 30cm밖에 되지 않았을까. 개구리가 멱 감았다면 모를까 개구쟁이 어린이들이 어떻게 30cm 깊이에서 멱을 감는단 말인가. 이것은 복원이 아니라 복원이란 이름의 모조이다. 거대한 것, 웅장한 것을 좋아하는 서울시가 어떻게 그처럼 얕은 깊이의 청계천을 만들 계획을 했는지 모르겠다. 30cm 깊이의 청계천을 생각하면 마치 아이들의 소꿉놀이 같은 기분이 든다.
기왕에 하는 복원공사, 좀 더 신경을 써서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시궁창 청계천을 맑은 물 청계천으로 복원해 한국의 대표적인 "환경승리의 표본"을 이뤘다고 자랑하다가도 "수심이 30cm"라는 실체가 드러나면 좀 머쓱할 일이 아닌가. 서울시는 다시 한번 검토해서 평균수심을 최소한 1m 정도는 유지해야 제법 그럴 듯한 개천 같은 멋이 풍길 것이라고 본다.
이기옥 artcd55@naver.com
<이기옥님은> 간호학을 전공하고 대학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습니다. 글쓰기와 등산, 여행을 좋아하며 양초공예에도 남다른 솜씨를 지녀 개인전을 갖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