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뭐하나? 행복은 질병이다 - '행복'에 대한 새로운 설명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사상가들은 행복은 천박하고 이기적인 목표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행복이 편견과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은 좀 다른 논점을 야기하다. 행복이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달리 말해서 행복은 당신 자신과 사회에 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편집자 주) 6월 20일 [The New York Times]에 실린 "Against Happiness"를 발췌 번역합니다. 필자 짐 홀트는 [The New Yorker]와 [Slate] 등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스 라이터이다. 노인은 행복할수록 오래 살고 어린아이들은 쾌활할수록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은 재미있는 보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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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사람들은 공격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복한 사람들도 공격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발견이 [심리 과학 Psychological Science] 최근호에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화난 사람은 다른 사회 집단을 판단할 때 부정적인 평가를 할 가능성이 높은데 행복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행복감이 클수록 편견에 사로잡혀 - 예를 들어, 소수 집단에 속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식으로 -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다 괜찮아 everything is fine"라는 태도를 갖고 있는데 그 때문에 분석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대신 뒤로 물러나 지배적 편견(stereotype)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것.
행복감 속에 작은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는 뉴스는 상당히 불편하다. 우리 미국인들은 행복의 추구를 신이 부여한 권리로 여기는 나라에 살고 있다. 미국인의 행복 지수를 측정해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1994년 4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을 때 미국인들은 스웨덴 사람들을 빼면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감을 표했다. 물론 행복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있어왔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같은 사상가들은 행복은 천박하고 이기적인 목표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행복이 편견과 연결되어 있다는 발견은 좀 다른 논점을 야기하다. 행복이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달리 말해서 행복은 당신 자신과 사회에 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행복의 결과는 지극히 긍정적인 것이라고 여겨졌다. 행복감은 수명을 연장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만들고 직업 활동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알려져 왔다. 이런 통설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가령 1980년대 독일에서 행해진 연구에 따르면, 70세 노인 중 행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20개월 이상 더 오래 산다. (반면 쾌활하고 낙관적인 어린이들은 수명이 더 짧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었다. 위험한 상황을 회피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행복한 사람들이 무감각하고 정치적 리더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한 소처럼 말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반유토피아 소설 [위대한 신세계]를 보면 노동 계급에게 행복감을 일으키는 약을 먹여서 순종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는 행복감이 골빈 그리고 순응적인 시민을 만든다는 증거가 없다. 반대로 행복한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보다 정치적 참여가 높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행복감이 자신에 대한 비합리적인 평가를 유발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 심리학자 리차트 벤틀(Richard P. Bentall) 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환경 통제 능력이 탁월하다고, 비현실적인 정도로 긍정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또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그런 능력에 대해 자신과 똑같이 긍정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아울러 타인과 자신을 비교할 때 공평성을 잃는 경향도 보인다." 벤탈은 행복감을 정신의학적 질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도하다 싶기도 하지만 벤탈이 제시한 증거들은 - 행복감이 편견과 얽혀 있다는 위의 이론과 함께 - 행복을 최고 선으로 여기는 우리들의 믿음을 뒤흔들만하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사회적 진전을 가장 많이 이룬 사람들 즉 여성과 교육을 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행복의 수준이 도리어 낮아졌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교육과 자유도가 증가할수록 충족불가의 욕망은 불가피하게 다분화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풍족해지고 의미로 가득하다고 할 경우에도 우리의 행복감은 저하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행복이 중요한 목표가 아닌 나라들 즉 동양의 중국에서는 인생에 대한 만족 수준이 낮게 나타나지만 자살율은 낮다.
행복감이 한 개인의 캐릭터를 망칠 수 있다는 아이디어 - 가령 행복감이 편견을 낳는다는 논리 -는 고대 철학자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행복과 미덕(virtue)은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미덕의 인간은 행복하다. 고문을 받더라도 그 행복은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고대의 행복은 절대적인 것이었다면 현대의 행복감 정의는 주관적 혹은 상대적이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행복하냐'고 묻을 때, 당신은 감정 상태(mood)를 체크하고 당신의 환경을 주위 사람의 환경과 비교하면서, 답을 만들어내야 한다.
암브로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 The Devil's Dictionary]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복 : n. 타인의 불행을 목격하는데서 오는 유쾌한 감정". 그 정도까지 씨니컬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에 관해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것대로만 하면 된다. 행복을 추구하되 의무로 생각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출처: http://www.cultiz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