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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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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지금 이 순간도 렌즈에 담아야 할 게 수두룩한데 오래 전 사진이나 정리하고 있으니…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아. 멀리 갔다가 몸에 탈이라도 나면 대책이 없기에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잠깐 동안의 휴식 정도로 생각하려 해도 현장이 자꾸 눈에 밟혀서 말이야….” 요즘 사진작가 김수남(57)씨의 작업실에는 30여년의 세월을 간직한 필름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열화당에서 펴내는 국내외 작가들의 문고판 사진집에 실리기 위해 ‘낙점’을 기다리는 것이다.
러시아 동시베리아의 중심지인 바이칼호 서쪽의 이르쿠츠크로 사진 작업을 나갔다가 ‘위장 출혈’로 갑작스럽게 쓰러진 게 7개월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의 몸속에는 위장의 상처를 묶어놓은 의료용 집게가 하나 남아 있다. 이르쿠츠크에서 수술할 당시에는 4개였는데 그동안 3개가 제거됐다. 국내에서라면 훨씬 일찍 아물 상처인데 허름한 의료용 기구 탓에 집게가 떨어지면서 다른 상처까지 일으켜 몸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렌즈로 세상을 훔치고 사람에 빠져 있다 보니 정작 자신의 몸은 챙기지 못했다.
일간지 사진기자 출신인 그가 한국의 전통을 필름에 기록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의 굿 사진으로 20여권의 사진집을 냈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아시아의 오지를 렌즈에 담아왔다. 지금껏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를 남기는 데 들어간 필름이 3만롤이 넘는다. 러시아로 향하던 발길이 머문 뒤, 그는 한국의 예인들을 필름 속에서 간추려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아름다움을 훔치다>(디새집 펴냄)에 펴냈다. 소리광대·춤광대 등으로 불리던 전통예인들과 더불어 무당과 농군 등으로 기예를 떨친 사람들의 초상을 담았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다 흐느낀 날이 많았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예인들의 행위에 빠져들면 그들의 내면이 보였기 때문이야.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기에 나는 시대의 끝자락을 기록한 셈이지.” 이런 탓에 지금까지 40여권의 사진집을 펴낸 그에게 ‘한국의 예인 시리즈’는 특별하다. 그가 만난 예인은 60여명, 이번에 고작 11명만 묶어냈다. 나머지 예인들은 ‘언젠가’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의료용 집게의 고통의 사라지는 날, 그는 다시 카메라 가방을 챙겨들고 어디에선가 우리가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들을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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