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사회문화연구실장, 문학박사)
인간과 문학 (1)
문학을 통해 자연을 표현하는 인간 Literature and a human being
문학은 인간의 삶을 그 대상으로 한다. 다만 문학의 주체인 작가들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함으로써 문학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단테가 어떻고 셰익스피어가 어떻고 괴테가 어떻고 하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주장을 하지만 그들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이다. 단테(1265-1321)는 {신곡}에서 인간이 바라본 종교의 세계를 그렸으며 셰익스피어(1564-1616)는 그의 비극작품에서 운명과 싸우는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고 있다. 괴테(1749-1832)의 경우도 {파우스트}에서 만족할줄 모르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인간은 노력을 통해 신의 구원을 받는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기가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과 대결하면서 하나의 진실 또는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이 문학이라는 결정체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문학작품의 경우 그것을 쓰는 작가의 사상이나 의도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문학과 인간과의 관계를 좀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작품의 생성과정뿐 아니라 수용과정이 고려되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괴테라는 한 인간이 청년시절에 쓴 시 [들장미 Heiden- röslein]와 장년시절에 쓴 시 [발견 gefunden]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작가와 문학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저 한다. 그리고 그 시들이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가를 수용과 영향의 측면에서 살펴볼 것이다. 즉 문학과 독자의 관계 파악이 그둘째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문학이 인간과 가지는 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들장미 (1771)
어린 애가 하나 장미꽃을 보았다네,
들에 핀 장미꽃을,
그게 어찌나 청초하고 아름답던지,
그 꽃을 가까이서 보려고, 그리로 달려 갔다네,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 꽃을 보았지.
장미, 장미, 빨간 장미꽃을,
들에 핀 장미꽃을.
어린 애가 말을 했지: 내가 너를 꺽겠어,
들에 핀 장미꽃아!
장미꽃이 말했지: 내 가시로 너를 찔러서,
네가 늘 나를 생각하도록 하겠어,
나는 그러한 일로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거든.
장미, 장미, 빨간 장미꽃을,
들에 핀 장미꽃을.
결국 그 거친 어린 애는
들에 핀 장미꽃을 꺽었다네;
장미꽃은 저항을 하면서 찔렀지,
그러나 그 어떤 고통과 탄식도
그 녀석에게는 통하지 않았네,
장미꽃은 고통을 당해야만 했지.
장미, 장미, 빨간 장미꽃을,
들에 핀 장미꽃을. 발견 (1813)
내가 숲을
혼자 걸어 가면서,
그 어떤 것도 찾으려 하지 않았어,
그게 내 심정이었거든.
그늘 속에서 나는 보았어
작은 꽃이 하나 피어있는 것을,
별처럼 그렇게 빛이 나고,
어린애 눈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나는 그 꽃을 꺽으려 했지,
바로 그때 꽃이 나지막히 말했어:
그래 나를 꺾어
시들게 할거야?
나는 그 꽃을
뿌리채 뽑아서는,
아름다운 우리집
정원으로 옮겼다네.
그리고는 그 꽃을
조용한 곳에 심었지;
이제 그 꽃은 잎도 무성해지고
항상 꽃을 피우고 있다네.
40년 간격을 두고 쓰여진 이들 시는 자연을 보는 작가의 입장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괴테라는 인간이 지닌 자연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에 대한 괴테의 관점이 변한 것이기도 하다.
[들장미]에서는 어린애와 장미꽃이 나오지만, [발견]에서는 구체화되지 않은 한 남자와 작은 꽃이 하나 나온다. 젊은 시절의 괴테는 질풍노도적인 사고를 가지고 주체와 객체를 분명히 하지만, 장년의 괴테는 고전주의적 입장에서 보편적인 인간과 꽃을 등장시킨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점이 일반화되고 순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다음으로 [들장미]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대결하고 갈등하는데 반해 [발견]에서는 이들 둘이 화해하고 조화를 이룬다.
꽃을 꺾지 않고 집으로 가지고 가고 그 꽃을 삶의 일부분으로 만드는 달관의 경지는 장미꽃을 꺾고 마는 젊은 혈기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괴테라는 인간이 거의 같은 대상을 놓고 이렇게 다른 입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들장미]에서는 아직은 미완성인 한 인간이 자연에서 무한한 자유와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그냥 꽃을 꺾는 것이지, 죄책감, 책임감같은 도덕이나 규범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발견]에서는 고전주의에서 추구하는 '완성 Vollendung'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적 자아로 나오는 나는 꽃이 전해 주는 무언의 말때문에 꺾어 시들게 하지 못하고 함께사는 최선의 방책을 생각하게 된다.
화려해 보이는 장미는 꺾이고 말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들꽃은좀더 오래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겸손의 미덕을 제시하고 있는듯도 하다. 화려한 장미와 그늘 속에 숨어있는 이름모를 작은 꽃을 통해 괴테는 삶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 속에 있는 하찮은 존재를 통해 삶의 형이상학적 구도를 보여주는 괴테에게서 '아름다운 문학 schöne Literatur'의 진수를 발견할 수 가 있다.
다음으로 수용과 영향의 측면에서 문학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문학에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을 후세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이고 또 해석할 수 있다. 과거의 명성이나 해석을 동시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공격하거나 타기하는 것도 필요하며, 작가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된 문학작품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봄으로써 기대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다. 기대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은 문학 속에 나오는 인간을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문학과 인간의 관계가 좀더 다양하게 또는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들장미]와 [발견]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꽃의 만남을 사랑의 행위로 생각해 보자. 전자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거칠게 다루는 과정이 연상되며, 후자에서는 둘이 적절하게 주고받는 사랑의 밀어가 보이는듯 하다. [들장미]의 소년은 결국 들장미를 꺽고 말지만, [발견]의 한 남자는 상호 교감을 통해 사랑의 클라이막스에 오르는 것이다.
또 다르게, 들에 있는 꽃을 옮기는 '인공의 미학'에 대한 찬반으로 논리를 전개시킬 수도 있다. 들에 있는 꽃을 정원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짓이냐의 문제다. 모든 생물에게는 고향이 있다. 그리고 그 고향의 풍토에 맞게 적응을 해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주변 환경을 바꾸어 줌으로써 그 꽃이 잘 적응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에 대한 입장 천명은 독자 모두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들 詩에서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3단계 또는 5단계 구조가 이야기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의 3막, 5막구조를 연상시켜 詩의 극적인 요소를보여준다. 특히 대화체가 詩속에 나타남으로써 극적인 요소는 더욱더 그 의미를 더하게 된다. 이러한 극적인 요소는 한 인간이 가지는 내면의 생각이 인생의 무대로 옮겨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다른 구조적인 특징으로는 대칭의 구조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것은 [발견]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것이 내용의 완벽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형식이 내용과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한편의 시는 정신과 육체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인간과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지닌다. 詩도 바로 하나의 유기체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할 뿐 아니라 바로 인간 그 자체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바로 인간의 삶을 대상으로 하면서 또 인간의 삶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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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2)
작가와 국가 그리고 이념 Writer, state and "Idee"
독일인의 노래
호프만 폰 활러스레벤
1841년 8월 26일 헬고란트에서
독일, 독일을
이 세상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넘어,
공격하고 또 방어를 할때
독일인들이 형제애로 뭉친다면,
마스강에서 메멜강까지,
에취강에서 벨트만까지 -
독일, 독일을
이 세상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넘어!
독일의 여인들, 독일 사람들의 충성심,
독일의 포도주와 독일의 노래가
이 세상에서
그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름다운 소리를 유지해야 하고,
우리를 열광시켜 고상한 행동을 하도록 해야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생동안 -
독일의 여인들, 독일 사람들의 충성심,
독일의 포도주와 독일의 노래가!
통일과 권리 그리고 자유를
조국 독일을 위해!
우리 모두 그것을 추구하자
몸과 마음을 바쳐 형제애로!
통일과 권리 그리고 자유가
행복을 보장해 줄거다 -
이러한 행복의 불꽃 속에서 피어나라,
피어나라, 조국 독일이여!
이것은 1922년 이후 독일의 국가로 불려지고 있는 활러스레벤의 정치시이다. 이 시가 쓰여진 1841년은 독일이 통일을 이루기 전으로, 프랑스 혁명이후 혁명과 보수반동정치가 반복되던 때이다. 그리고 당시 독일은 수십개의 나라가 느슨하게 결합된 연방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더우기 당시는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로 작가가 시를 쓰고있는 장소인 헬고란트도 역시 영국의 땅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시대상황과 조국 독일의 통일을 보고자 하는 작가 개인의 염원이 어우러져 독일인들의 노래는 창작되었다. 이 노래는 1900년대에 들어와 독일 국민들의 소망과 맞아 떨어져 1922년에는 독일의 국가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더우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가에 곡으로 사용되었던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 "황제"가 이 노래의 멜로디로 사용되어 독일민족의 정통성을 표명하려고까지 했다.
1연은 독일이 과거 한때 지배했던 영역까지 그 영토를 확장하자는 내용이고, 2연은 그러한 지역에 독일인들의 문화를 건설하고 또 전파하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3연은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통일조국을 건설하고, 그 조국이 꽃을 피우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작가와 국가의 관계, 더 나가서는 작가가 가지는 이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러한 작가의 이념이 독자와 만날때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통일조국을 염원하는 작가의 정치적인 바램이 히틀러 지배하의 제3제국에서는 독일민족의 우월성 표출과 세계정복의 환상으로까지 발전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작가가 문학을 통해 전하려는 사상과 이데올로기 또는 이념이 상황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부추김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당시 지식들중 상당수는 당시 민족주의를 지향해가는 독일인들의 모습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투콜스키 Kurt Tucholski같은 사람은 활러스레벤의 시행을 풍자한 {독일, 독일을 그 모든 것을 넘어}라는 책에서 당시 국가사회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투콜스키가 중점을 두고 공박한 내용은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의 허구성이다.
"우리는 깃발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 그러나 우리는 이 나라를 사랑한다. 그리고 민족을 내세우는 단체들이 북을 치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것처럼 - 이곳에서 독일에서 태어난 우리, 우리들은 똑같은 권리를, 정말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우리들은 민족을 내세우는 당나귀만도 못한 수많은 녀석들보다 독일어를 더 잘 말하고 또 쓸 수 있다 - 정말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우리는 강과 숲, 해안과 집, 나무가 없는 목초지를 빼앗을 것이다: 그건 우리나라다. 우리는 독일을 증오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독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나 또 일부 지식인들은 나치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는데 앞장서기도 했으며, 많은 지식인들은 붓을 꺽어 암묵적으로 국가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특히 정치성이 있는 일부 문화인들은 문학이나 예술을 정치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인 문학과 예술은 예술성이나 지속성등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고 생명이 그렇게 길지는 못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문학 즉 일종의 선동문학은 아주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단지 역사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 당시의 글들이 소개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아름다워야 하고 그 이념이 순수해야 한다. 그리고 문학은 개인의 창작이지 결코 집단이나 국가와 관련된 선전수단이 될 수는 없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나 이념, 내용이 정치성을 띨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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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3)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Nationalism
지금 세계는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구 소련을 지탱하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쇠퇴하고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가 구 소련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독립국가 연합이라는 느슨한 결합 속에 십여개의 나라가 독자적인 정부를 구성하여 통치하고 있다. 발트3국이나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계 국가들은 역사나 민족 종교 등에서 러시아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그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좀더 독자적인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문화를 이룩해 나갈 것이다.
이에 비해 유럽의 서쪽에 위치하고 여러 나라들은 '유럽연합'이라는 경제공동체를 잘 이끌어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정치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조직은 금세기 말까지 통화통합이라는 대 결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출발은 유럽 경제공동체였으며 앞으로 상당기간 경제에 중점이 두어질 것이다. 상품, 써비스, 인적자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유럽연합 체제는 미주나 유럽의 여러나라들로부터 경제블록으로 지탄받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유럽연합이 자유무역의 확대, 경제의 활성화에 촛점을 둔다는 그들의 설명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때부터다. 당시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뭉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 사람들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 국가들의 강력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유럽은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이 정치와 사회적인 통합과 연대로 확대되어 갔던 것이다. 더우기 30년전쟁(1618-1848)을 통해 종교와 국가를 따지는 일이 얼마나 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가를 깨달았다.
1683년 유럽의 여러나라가 힘을 합쳐 오스만터어키를 격퇴시킨 이후 유럽에는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세력과 유럽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가였으며, 유럽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문화적인 일에 종사하는 작가와 예술가들이었다. 그러나 유럽주의도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의 확대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낮선 문화 특히 이슬람 문화를 경시하는 문화우월주의의 소산이었으며, 문화 제국주의이고 유럽 중심주의였다.
독일의 정치시인 하이네에게 있어 유럽은 조국이었이었으며, 그것이 '유럽 합중국'으로 발전하기를 바랬다. 니체도 역시 민족주의와 기독교주의에 반대하는 이상적인 유럽을 건설하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제국을 이상으로 삼았다. 제1차 세계대전후 '범유럽운동 Pan-Europa-Bewegung'이 전개 되었는데, 이것 역시 하이네처럼 유럽 합중국을 창설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다만 유럽의 시민 모두에게 평화와 자유 그리고 정의를 부여하려는 좀더 현대적인 의미의 민족주의 운동이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통합의 이념이 다시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히틀러가 지배하던 나치의 유산을 청산하자는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유럽을 통합하려는 이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움직임으로 변화되었으며, 냉전체제라는 새로운 민족주의 경향을 드러내게 되었다. 즉 유럽 이념의 보수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학생운동 이후 지식인을 중심으로 유럽이념의 정치화에 반대하는 흐름이 있기는 했다. 이들은 유럽통합을 통해 강력한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각기 상이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또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가질때 오히려 건전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은 정치통합으로 나가고 있다. 외적으로 볼때 지금까지의 과정은 별 무리가 없었고 앞으로도 별 무리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당장 내년이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유럽연합 국가가 된다. 그러나 내적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여곡절이 많다. 앞으로 그 어려움은 도를 더해갈 것이 틀림없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이룩한 성취가 유럽통합으로 위협받는다는 생각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야 긍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통합에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경제통합이 좀더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때쯤가면 유럽 통합은 난관을 겪을 수도 있다.
더우기 각국 또는 각 정파의 이해가 얽혀있는 정치통합은 아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정치란 원래 인간들이 삶을 영위해 가면서 사태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아주 긍적적인 일이지만, 그것이 이해관계로 얽히기 시작하면 정치로 일을 풀어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유럽통합을 주도하고있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 유럽을 통합시키는데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그동안 경제적인 제약들이 많이 철폐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한 의지와 노력이 유럽의 전체 주민들에게 뿌리는 내리는 일이 남아 있다. 즉 유럽 통합의 의지가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의 뜻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이 유럽의 시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 역할을 누가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문화 예술인들의 몫이다. 유럽통합이 하나의 순수한 이념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권모술수, 경제인들의 이익추구가 아닌 문화 예술인들의 순수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유럽인의 의지가 다른 대륙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인 패권주의의 소산이라든지, 과거처럼 다른 대륙에 대한 무시나 경시라든지, 경제적인 블록을 형성하는 것 등으로 비쳐질때 유럽통합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지금도 벌써 NAFTA나 ASEAN 또는 APEC같은 대응질서나 조직이 탄생했거나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서방세력에 대해 항상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또한 사회주의의 실현에 실패한 동구제국에게도 점진적으로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그들을 소외세력으로 남겨둔다면 그것은 아마 유럽통합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다.
세계는 경제를 통해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자동차 하나 옷 한벌이 이제는 어느 한 나라 안에서 어느 한 기업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도에서 재배된 면화가 중국에서 가공되어 한국으로 넘어온다. 그러면 그것은 염색이 되어 이탈리아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품화되어 전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그 제품이 Made in Italy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이제 그것이 지니는 국적은 무의미하다.
또한 다국적 기업을 통해 세계는 벌써 하나가 되고 있다. 지금 GM이나 Ford등과 같은 자동차 회사들은 세계 각국에 현지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부품조달 역시 현장에서 하고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표시는 Made in U.S.A.이지만 富는 그것은 생산한 나라들에 배분된다.
경제를 통해 볼때 국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에는 세계주의가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나 종교적인 갈등, 국경분쟁 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고 오히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럽대륙이 유럽연합을 통해 유럽주의 더 나가서는 세계주의를 지향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룩해 놓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편이 유럽통합으로 표현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그것의 실체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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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4)
문학과 휴머니즘 Literature and humanism
우리는 20세기의 말에 살고 있다. 지금은 100년이 변하는 세기말인 동시에 1,000년이 변하는 천기말(千期末, Jahrtausendende)이다. 보편적으로 세기말은 난세(亂世)를 의미하고 있다. 인륜 도덕의 타락, 경제의 어려움, 정치의 난맥상, 퇴폐적인 문화 등을 이야기 한다. 특히 지금부터 100년전인 지난 19세기 말이 그러했다. 그리고 현재도 역시 그러한 징후가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세기의 상황에 덧붙일 것이 있다면 환경파괴, 경제전쟁 등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휴거라느니 말세라느니 해서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그 세를 얻어가고 있다. 종교가 판을 치고 있고, 그 종교로 인해 대립과 반목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할 종교가 이기주의 분파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전부 all가 아니면 전무 nothing를 추구하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내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세가 비아냥 꺼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역사소설이나 풍수서적이 출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재미를 추구하는 탐정물과 추리소설류가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문학의 주제인 '휴머니즘'을 다룬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나온다고 하더라도 팔리거나 읽히지를 않는다. 아마 그것이 입시와 관련이 있어서나 겨우 읽힐 정도다. 학문과 순수, 사유(思惟)와 정도(正道)는 아마 세인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는가 보다.
다음의 이야기에서 부지런함의 대명사 벌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능가하는 사랑과 보은(報恩)을 보여준다. 이기심과 복수심이 팽배한 인간세상에서 벌은 그 인간들을 징벌하고 있다. 이 짧은 탐정소설에서도 휴머니즘은 살아있다. 문학에서 추구하는 휴머니즘, 그것은 영원한 주제로 존재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통해 하늘의 뜻은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G.말란:
나는 여기 있을거야...!
아침나절에 나는 지난 밤 우박으로 피해를 입은 벌통을 고치기 시작했다.그러면서도 나는 호루라기나 천으로 된 가제는 결코 이용하지 않았으며, 장갑을 이용한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벌들은 영리한 동물이다. 벌들은 나를 알아 보았고, 더우기 - 그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로서 - 그 녀석들은 나를 사랑하기까지 했다.
정오경에 마차가 한대 나타났고, 그곳으로부터 옛날의 상관 허스트가 내렸다. 조금 멀리서도 나는 벌써, 그에게 걱정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내쪽으로 와서는 손을 잡았다 - 그리고 나서 바로 가까이 있는 위험한 벌통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우리는 숲이 끝나는데 쯤에 앉았다. 허스트는 나에게 담배를 한대 권했다. 우리들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말을 했다: "도널드 훨링어가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었대, 스티브. 그리고 그 녀석이 다짐을 하더래: 자네에게 빚을 갚을거라고."
"계산할 것이 남아있지 않을텐데", 하고 나는 대답을 했다. "훨링어가 모범수로 복역을 했대". 허스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렇지만 자네가 그 녀석을 찾아 냈잖아, 그리고 그 당시 그 녀석을 체포한 것도 자네잖아. 범죄자들이란 그들의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지."
"나는 더 이상 그 일에 종사하지 않는데", 하고 나는 말을 했다. "훨링어가 그것을 물어보지 않던데." 허스트는 화가 난듯 담배연기를 쭉 빨아 들였다. "그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자네는 지금도 역시 그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저주받을 정치가란 말일세. 그 녀석이 자네에게 앙갚음을 할거라고 다짐을 하더래, 스티브." "그렇다면 그 녀석이 감히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나는 말했다. "이제는 나도 역시 아마추어가 아닌데."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은듯이,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사실은 등줄기로 식은 땀이 흘렀다. 허스트는 나를 응시했다. "스티브, 걱정하지 말아. 자네는 나이가 들었지. 그리고 도널드는 한창 나이 아닌가. 자네가 앞으로 몸에 대포를 지니고 다닌다고 해도, 자네는 그걸 사용할 수 없을걸세. 훨링어 녀석 방울뱀 만큼이나 빠르다네. 그리고 정확히 치명타를 가하지. 내가 여기 온 것은 자네를 데려가기 위해서야. 도시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을거야."
그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곳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 "그러면 그동안에 벌은 어떻게 되고?" "스티브, 자네에게 지금 무엇이 중요한가: 벌들인가 아니면 자네 목숨인가?" "두가지 다지", 하고 나는 말했다. "벌들은 내 생명과 같다네. 몹쓸 곰들이 말야, 내가 벌들을 떠나기만 기다리지. 안돼, 반장. 나는 여기 있을거야."
일은 그렇게 되었다. 허스트는 다시 이곳을 떠나갔다. 나도 집으로 들어가서 장속에 넣어 두었던 오래된 권총을 끄집어 냈다. 오후내내 나는 그 권총을 분해하고 닦으면서 보냈다. 곧이어 나는 과녁을 향해 사격연습을 했다. 전에 나는 잘 맞췄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오래전 일이다. 허스트가 말한 것은 사실이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근육이고 관절이고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역시 명중이 잘 되지 않았다. 내 눈으로 정말 어려웠다. 20야드 거리에서도 나는 병 하나를 맞추지 못했다. 벌들만 없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허스트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2주일이 지나갔고, 곰들이 또 한번 벌통을 긁어 버렸다. 그 녀석들은 꿀을 먹으려고, 벌통 3개를 뒤집어 버렸다. 내가 그 벌통들을 똑바로 세워 놓았을때, 바로 그 녀석의 목소리를 들었다: "잘됐군, 스티브, 당신을 다시 보게 되다니." 나는 몸을 일으키고 나서는 뒤돌아 보았다. 그 녀석이 숲의 빈터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바로 알아 보았다. 스티브 훨링어: 그 녀석이었다.
"훨링어, 당신이 원하는게 뭐야?": 하고 내가 물었다. "내가 서있는 이 땅에서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당신, 돌아 가시지!" 그는 웃었다. 그 녀석은 아직도 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천박하고 잔혹하게 웃을 수가 있었다. 몇년이 흘렀지만 그에게 변한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스티브, 우리 사이에는 아직도 청산해야 할 것이 몇가지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감옥에서 15년 그것은 긴 시간이야. 많은 사람은 그동안에 약해지고 고분고분해지지. 그러나 스티브,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그 어떤 것을 결코 잊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냐. 나는 매일 당신을 생각했어." 내 권총은 바지 춤 총집에 들어 있었다. 그 위에 외투를 걸쳤는데, 단추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훨링어, 당신도 잘 알잖아, 나는 단지 내 의무만을 수행했다는 것을." 그가 한발 한발 내쪽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왔다, 들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스티브, 그것은 당신 생각이지. 내 생각은 좀 달라. 내 생각은 그래: 도날드 훨링어가 이제 계산을 해야 한다는 거지."
나는 권총을 뽑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내가 아주 날쌨을때도 이런 방식으로 훨링어와 대결할 수는 없었다. 내가 술집에서 그를 체포했을 때도, 그는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술집 주인이 그의 위스키에 수면제를 탔던 것이다. 훨링어는 나보다 두배는 빨랐다. 그 녀석은 너무나 빨랐다.
나를 죽이려는 욕구가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그가 쏜 첫 방은 내 머리에 있는 모자를 떨어 뜨리면서 벌통을 관통했다. 두번째 총탄은 내 오른쪽 어깨를 맞췄다.
세번째 총알이 나를 거꾸러 뜨릴 차례였다. 그러나 이 세번째 총알은 발사되지를 못했다, 훨링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손으로 얼굴을 감싸안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참혹했다. 벌들이 그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총알 때문에 벌이 난폭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수천 마리의 벌들이 한 남자를 습격한다면, 그 자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 가서는, 자동차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훨링어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나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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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5)
문학과 미술 Literature and art
인간들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만을 문화로 여긴다. 생각을 밖으로 표현한 모든 것이 문화이지만 그 생각이 문자나 소리 또는 그림으로 남아있어야만 문화적 가치를 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시간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최초의 문화적 유산을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찾고, 또 이집트나 중국의 상형문자에서 찾는다. 음악적 유산은 오히려 더 오랜 역사를 가질테지만 그것의 전달은 악보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연원은 훨씬 뒤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술이 독자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소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림의 일종인 악보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은 형식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출발은 같다. 그 때문에 근대 이후 예술에서 문학이 음악이나 그림의 내용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음악과 미술이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자연이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문학이나 음악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이스 로마시대 건축이나 조각은 모두 신화와 관련이 있으며, 이 신화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소산이다. 인도나 중국에서 발견되는 불상조각이나 탱화 등은 불교경전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졌다.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모든 예술도 역시 이집트 민간신앙 또는 문화와 관련이 있다.
르네상스 이전의 유럽 중세문학과 아랍문학, 중국의 唐宋문학이 모두 종교와 관련이 있으며, 그러한 이유 때문에 더욱 더 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유럽에는 기독교가, 아랍에는 이슬람교가, 중국에는 불교가 당대를 풍미했고 그러한 문화유산이 문학 속에 보편적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화로, 건축으로, 조각으로 표출되어 나타났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장 보편적인 문학으로 우리는 성경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술사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중 상당수는 성경을 소재로 한 聖畵다. 중학교에만 가면 알게되는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바로 대표적인 종교화가이다. 이들은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이나 성경의 한 귀절 또는 특별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그 시대정신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그후 미술의 흐름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를 거치면서 매 시대마다 뚜렷한 양식과 내용을 지니게 된다. 고전주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예술은 절제와 형식미 그리고 규범이었다. 빙켈만이 말한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도 고전주의 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제이다. 완성과 무한이라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설명되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연이어서 나타난다. 무한과 동경, 비합리적인 힘, 원천적인 것을 추구하는 낭만주의는 무한한 가능성과 생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세계를 주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음악가들은 소리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려 했고, 화가들은 색을 통해 영적인 것을 말하려고 했으며, 작가들은 말을 통해 시를 읊으려고 했다. 그것은신과 인간, 자연과 문화라는 대상과 현실이 주관적으로 느껴지고 표현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술이란 '심장으로부터 솟아난' 산물이며, 같은 맥락에서 '감정의 자발적 표출'이 문학이다.
문학과 미술에서 객관성을 지향하던 사실주의를 지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인상주의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문학과 미술이 조응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미술이 문학을 압도한다. 문학적으로 인상주의는 미미하다. 오히려 상징주의라는 말로 대변되며 인상주의와는 사뭇 그 분위기나 지향점이 다르다. 오히려 문학에서의 사실주의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미술에서의 인상주의다.
이들에게는 대상에서 느끼는 순간적인 인상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대상과 자연을 계속 변화시키는 빛의 작용이 중요한 관찰의 대상이다. 그들은 어떤 상황의 순간을 포착해서 표현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주의문학에서 말하는 '순간포착 서술법'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인상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순색의 사용을 즐겼다는 점이다. 이 사조에 와서야 비로소 미술은 그 재료의 특수성을 가장 분명하게 살릴 수가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이제 문학과 미술은 다시 동시대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사조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다. 더우기 이 시대에는 작가가 예술가로 동시에 활동하는 경향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 표현주의를 주도하던 잡지인 {폭풍}은 문학과 미술을 망라하는 예술활동을 펼쳤다.
잡지속에 들어있는 그림이나 삽화는 글로 쓰여진 것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한다. 예술이 가지는 밀접한 관계가 하나의 지면에 표현되는 것이다. 개인의 자화상, 행동이나 전투장면, 투쟁, 절규 같은 인간의 모습이 거친 판화를 통해 즐겨 표현되었다. 또 당시의 정치나 사회의 부정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표현주의라는 개념도 동시대의 진보적인 예술활동을 총칭하는 표현이었다. 표현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물론 미술에서였다. 뮌헨에서 활동하던 칸딘스키, 마르크, 마케, 클레 등의 '청기사'그룹과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던 키르히너, 헤켈, 놀데 등의 '다리'그룹이 그 중심을 이루었는데 그들 모두는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강렬한 색상의 사용과 대상에 대한 왜곡이나 희화화가 두드러진다. 예술작품은 더 이상 미학적으로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자연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실제 보이는 자연의 모습이 원초적이며 단순한 상으로 나타난다. 대상은 더 이상 구상을 요구하지 않고 추상화한다.
문학에서도 이러한 입장이 받아들여져 작가의 내면적 체험을 도전적으로 표현하려는 운동으로 표현주의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 속에 있는 인간적인 것을 인식하고 구조해주고 일깨우려고 한다. 마음 속에 있는 가장 단순한 감정, 善이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즐거움이 찬양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에게 표출할 수가 있다. (---) 인간을 구해주는 것은 환경이 아니고 바로 인간이다. 본질적이면서도 모두를 규정하는 것은 제도나 발명 또는 법이 아니고 바로 인간이다."
( 쿠르트 핀투스: 인류의 여명, 서문 )
세계의 종말
시민의 뾰족한 머리로부터 모자가 날아간다.
공중에는 모든 방향으로 외침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기와장이가 떨어져 두조각이 난다.
그리고 해안에는 - 사람들은 읽는다 - 조수가 높아진다.
그곳에는 폭풍이 일고 있다, 거친 바다가 날뛰면서 육지로 밀려온다,
두껍게 쌓은 방파제를 부숴 버리기 위해.
사람들 대부분이 감기에 걸린다.
기차가 다리로부터 떨어진다.
시민세계의 종말을 표현한 야콥 판 호디스의 시 [세계의 종말]은 불안한 인간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인간세계의 모습은 우리 눈 앞에 시각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그것이 실제상황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모습은 분명한 모습으로 우리에 다가온다. 이 시는 표현주의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위에 인용한 {인류의 여명}에 의거 우리는 표현주의의 주제를몰락과 외침, 감정의 일깨움, 호소와 격분, 감정의 일깨움 등으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이 시의 주제는 분명 그 첫번째에 해당한다. 이것은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과도 일맥상통하고, 정신나간 대도시의 불안한 모습과 그곳에 살고 있는 인간군상을 그린 키르히너의 그림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 미술, 문학을 포괄하는 예술은 이제 다시 통합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이들이 표현하는 주제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시대정신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의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지향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예술은 상품에 굴복해버리고 말았다. 문화와 예술은 이제는 귀족적인 차원을 벗어났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와 예술 속에도 시대정신은 살아있고 또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전통적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벗겨내고 대중예술에 좀더 근접해 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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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6)
문학과 음악 Literture and music
옛부터 음악은 인간을 신과 연결시켜 주는 예술로 여겨졌다. 음악은 인간이 신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매개체로 그 존재를 인정받아 왔다. 비록신적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음악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감동시킨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소리꾼 아리온은 아폴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노래가 바다 속에 살고 있는 델피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재물에 눈이 어두운 탐욕스런 인간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신은 인간에게 음악을 선사했고 우리 인간은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한밤에 애절하게 울리는 피리소리는 시 한수와 연결된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이순신 장군의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로 보면 그것은 분명해진다. 또 옛날 한량들은 기생과 어울려 가얏고 소리를 들으면서 시로 화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우기 백결선생의 방아타령에 가면 음악은 삶 전체를 표현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표현수단이었다.
우리의 전통음악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판소리도 역시 문학과 소리가 결합한 좋은 예가 된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의 우리 고전이 판소리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으로 불려지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판소리는 대본만 있지 그 멜로디는 그냥 전수되어 내려올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소리는 문학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음악인 것이다.
언어와 소리의 어울림으로 표현되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문학과 음악의 결합은 근대 르네상스 이후 서구 사조에서 그 분명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 관심사는 음악적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가사와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학이 음악에 영감을 주어 작곡이 이루어진 것은 뭐니뭐니 해도 고전주의 시대였다. 고전주의 하면 우리는 음악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문학에서는 괴테와 쉴러를 떠올린다.
모차르트는 진지하면서도 명랑한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작품들이 모두 문학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모차르트는 동일한 제목의 문학작품보다 더 유명한 오페라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또 모차르트는 뚜렷한 개성으로 인해 후세 사람들에 의해서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으로 여러번 등장한다.
사실주의 시대 독일작가인 뫼리케는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라는 작품을 내놓는데, 모차르르트의 {돈 지오반니}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문학화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작가로 피터 쉐퍼가 {아마데우스}라는 드라마를 썼고, 그것이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모차르트의 사생활이 우리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기도 하다.
베토벤은 난청이라는 운명을 극복하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내놓았는데, 산책을 통해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베토벤은 산책을 하면서 시상을 떠올렸고 또 작곡을 했다. 그는 작곡을 詩作과 같게 생각했다. 그는 프로메테우스나 에그몬트같은 문학적인 소재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을 하기도 한다. 그의 음악을 위해 호머 셰익스피어, 괴테, 쉴러의 작품들은 하나의 모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언어와 소리예술 즉 문학과 음악 양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괴테이다. 그의 수많은 시들은 민요로 작곡되어 불리고 있는 바, 그 자신 역시 노래로 불려질 수 없는 시는 시의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작품은 드라마까지도 상당수가 운문으로 쓰여져 있고, 소설에서도 낭송되어지는 시들이 삽입되어 음악성을 더해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작품들도 구노와 마스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독일 가곡중에는 슈베르트의 것이 가장 친근하다. 그가 작곡한 {아름다운 물방앗간집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가 그것인데, 이 작품들 역시 뮐러라는 작가의 작품에 곡을 붙인 것이다. 우리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배운 [보리수}라는 노래를 기억해 보도록 하자.
보리수
성문 앞 우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지.
.
.그리고 그 가지가 속삭이며
나에게 말했지:
"동무여, 내게로 오게,
자네는 여기서 안식을 얻을거야!" .
그리고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작가인 호프만은 음악가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언어와 소리의 비밀은 같다"고 말한다. 음악과 문학활동을 동시에 수행한 사람으로 우리는 바그너를 들 수 있다. 특히 그의 악극 Musikdrama는 소리와 언어을 추구한 독특한 양식으로, 두가지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음악이 어떤 문학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은 문학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다. 문학이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바로 음악이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역으로 문학은 또 음악으로부터 새로운 소재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제공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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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7)
풍자, 풍자문학 Literature and satire
쿠르트 쿠센버그
빨리 산 인생
그는 어린애 때부터 벌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총알처럼 빨리 자랐으며 어느날 갑자기 그 성장을 멈췄다. 말을 하는데도 뒤죽박죽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생각이 말을 앞질러 갔기 때문이다. 그는 동작이 비호같이 빨랐으며, 동시에 여러 장소에 나타나곤 했다. 그는 매년 월반을 했다; 아마도 그는 그 모든 학년을 뛰어넘는게 좋았을 뻔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는 전령(傳令)자리를 하나 얻었다. 그는 전에 달려본 적이 있는 유일한 전령이었다. 그는 맏은 일을 하고는 쏜살같이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일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생각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해고를 당했던 것이다. 그는 속기에 몰두했고, 금방 1분에 500음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무실에서 그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우편물에 일주일 앞의 날짜를 기재했고, 사장이 천천히 불러대면 지루한 나머지 하품을 했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 그런데 그게 그에게는 엄청 긴 것처럼 생각되었다 - 사람들은 그로 하여금 버스 운전사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일을, 즉 달리는 자동차를 계속해서 정지시켜야 되는 그 일을 끔찍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리의 높은 건물들이 그에게 눈짓을 했다. 그 건물들을 즐겁게 지나칠 수도 있어야만 했는데. 그리고 정류장에서는 또 사람들이 타려고 눈짓을 했고, 그러면 그는 그것을 따라야만 했다.
어느날 그는 눈짓하는 사람을 주목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버스를 급하게 몰아 저 멀리 시계(市界) 너머까지 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 짓도 역시 못하게 되었다. 그 일이 신문에 보도되었고 스포츠 클럽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6일내내 운전하는 사람으로부터 속도경주를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달리는 것이라면 그는 승리자였다. 대기업들이 그의 환심을 사려고 야단이었다. 돈이 가장 많은 회사가 승리를 했고, 그 회사가 그를 고용했다. 그는 항상 지도적인 자리에 있었고 토론에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상대방을 능가하거나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가정을 꾸리기로 결정한지 몇분도 안되어 그는 올림픽 100m 경기에서 우승한 여자에게 청혼을 했고, 그녀를 운동장에서 바로 동사무소로 데리고 가서는 순식간에 결혼을 성사시켰다.
개개의 일에 그는 그와 같은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 젊은 부인도 모든 일에 그의 뒤에 처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 여자는 집안 일을 영화를 빨리 돌리듯이 해치웠다. 겨울이면 벌써 여름 옷을 입고 다녔고 때도 되기 전에 애를 낳았다. 즉 5개월이 되자 5개월짜리 어린애를 낳았으며, 그 녀석은 요람에서 벌써 유창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고 걷기도 전에 벌써 달리는 것을 배웠다. 그녀는 빨리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날아가면서 먹고 즉시 소화시킬 수가 있었다. 고용인들이 매일 바뀌었다. 얼마 후에는 매시간; 그리고 마침내 식당차의 요리사를 알게 되었으며, 시간의 촉박함을 잘 알고 사는 비행기 승무원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는 여러가지 면에서 남편의 훌륭한 내조자였다.
그는 삶에 속도를 더해가며 계속해서 달려갔다.그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빨리 달렸기 때문에 그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그가 침대에 누으면 이내 꿈을 꾸는 것이었고, 꿈을 다 꾸지도 못하고 그는 벌써 잠이 깨는 것이었다. 그는 목욕을 하면서 밥을 먹었고 옷을 입으면서 신문을 보았다.독특하게 고안된 활주로를 통해 그는 집에서 자동차까지 갔고 문 앞에 시동이 걸려있는 차를 타고는 총알처럼 빠져 나갔다.
그는 전보를 치는 것처럼 간단하게 말을 했고, 느릿느릿한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속도를 요구하는 운동경기에는 결코 빠지지 않았으며, 최고기록에 대해 상을 내걸었다; 그런데 그 상은 결코 수여되지 않았으니, 그것은 그 조건이 충족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빨리 얻어진 재산의 일부를 로케트 제조에 투자했다. 승무원이 있는 최초의 로케트가 발사되었는데, 그 승무원이 바로 그였다. 그것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비행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서두른 삶의 결과는 허망한 것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늙었고, 스물 다섯에 벌써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고 서른에 노쇠한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과학에서 그 이상한 경우를 조사해 보기도 전에 그는 죽어 없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화장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망스런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하루가 지난 후에 그를 추모하는 글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1분은 다시 60초가 되었던 것이다.
KurtKusenberg
- 1905년 스웨덴의 괴테보리 출생, 현재 함부르크에 살고 있음
-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
- 1947년 이래 자유작가로 활동
- 소설, 방송극, 예술비평, 에세이 등을 썼고, 번역작가로도 활동
- 유머와 풍자문학에 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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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8)
문학과 종교 - 禪詩 - Literature and religion
禪과 詩라는 말은 자세히 살펴보면 대립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禪이란 不立文字 見性悟道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를 통함이 없이 불성을 보고 도를 깨닿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詩라고 하면 문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대립과 모순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다는데 禪詩의 묘미가 있다. 그리고 이 禪詩에는 문학과 종교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즉 그 내용은 종교적이지만 그 형식은 문학이기 때문이다.
禪하면 우리는 달마대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교리체계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체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불교의 禪宗도 마찬가지다. 달마 이후 慧可, 僧璨 등으로 연결되는 禪宗은 慧能, 馬祖道一을 거치면서 체계화되고 또 변질된다. 체계화라거나 변질이라는 표현은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선사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고, 禪詩와 같은 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家風이나 宗風의 진작 여부와 결부시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馬祖道一이 중국의 禪宗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 보자. 그는 五宗七家風의 禪宗 법계에서 중시조쯤되는 분으로 중국적인 禪을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禪이 가지고 있던 신비적인 분위기를 일소하고 日常事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불교계를 지배하던 교학적인 체계를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일상사 그것을 바로 진리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일상사에 대한 천착이 선종의 핵심이 되었고 그것을 통해 견성을 실현하고 또 실천했던 것이다.
그러면 일상사를 읊은 趙州(787-897)의 十二時歌를 통해 종교의 일상성과 문학의 종교성을 살펴 보도록 하자. 서양의 24시 개념이 들어오기 전 동양에서는 하루를 12단위로 나누었다. 지금의 두시간을 하나의 단위로 해 12支의 각 명칭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래서 子時, 丑時, 寅時 등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불교에서 보는 하루의 시작은 丑時이다. 지금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1시에서 3시 사이이다. 사위는 깜깜하고 겨우 닭우는 소리 들리는 두세시 즉 丑時에 느끼는 趙州 스님의 변을 들어보자.
닭이 우는 것을 보니 丑時로구나.
우울한 마음으로 일어나 앉아
또 새고 또 지지부진 함을 보게 된다.
裙子 편삼은 하나도 없고
가사의 형상은 조금 남아 있다.
잠방이에는 허리가 없고
바지에는 발넣을 구멍이 없다.
머리에는 비듬이 서너말
전에는 수행을 통해
사람들을 제도하고 이롭게 하려 했건만
그 누가 알겠는가 변화 속에 멍청한 짓을 할 줄이야.
그리고 하루의 끝에 해당하는 시각은 子時이다. 우리가 통상 자정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불교에 뜻을 둔 출가자의 한밤중 계속해서 고뇌를 들어보자.
밤의 한 가운데 子時로구나.
마음의 경개가 어떻게 금방 얻어서
순식간에 멈출 수 있겠는가.
온 세상의 출가자들을 생각해 보니
나처럼 살아가는 자 그 몇이나 될 것인고.
흙으로 된 방바닥 자리는 다 헤지고
느릅나무 목침에 이불이라고는 전혀 없어.
존엄한 부처님 앞에
안식향도 피우지 못해
재(灰) 속에서 오로지
소똥의 기운만을 들을 수 있다.
이곳에는 현묘한 道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불교에 뜻을 둔 어떤 출가승이 읊어대는 신세 한탄이 들어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자. 일상사 그 자체가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일상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 자세가 바로 절대적 진실에 도달한 경지 아니고 뭐겠는가. 방거사(?-785)의 禪詩에 보면 "시방에서 행자들 모여들어/ 각자가 無爲를 배우려 하나니"하는 귀절이 나온다. 이때 無爲란 문자 그대로 함이 없는 즉 인위적인 요소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無爲란 열반과 眞如에 다름 아니다. 無爲에 해당하는 원어는 tathata로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한동인 우리 가요계에 유행하던 김국환의 '타타타'가 바로 '있는 그대로'라는 이 梵語에서 차용한 표현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출가승의 자세, 그것은 평범하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초월의 경지가 보인다. 깨달음을 표현한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르침을 설한 글도 아니면서 일상의 진리가 들어 있으니 그 평범성이 오히려 종교적인 친밀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문학적인 면에서도 운를 맞춘다든지 12수의 禪詩가 자수율을 맞춘다든지 해서 하나의 형식을 벗어남이 없다.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시간과 공간이 잘 어우러져 그 내용을 형성한다. 그러면서도 그 내용이 독자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종교적인 일상을 담은 禪詩가 바로 일상의 문학으로 작용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일상성이 담고있는 미학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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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문학 (9)
노동과 여가의 사회학 -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 Sociology of labor and rest
하인리히 뵐
노동 도덕의 타락에 관한 일화
유럽의 서쪽 해안 어느 항구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어선에 누워서는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옷을 잘 차려입은 관광객이 하나가 사진기에 칼라 필름을 넣고는 그 목가적인 풍경을 찍고 있었다: 푸른 하늘, 초록색 바다 그리고 파도위에서 평화롭게 부서지는 흰색 포말, 거무틱틱한 배, 어부의 빨간 모자. 철컥, 그리고 또 한번 철컥. 그래 좋은 일은 세번 있게 되지, 틀림없지 틀림없고 말고. 세번째 철컥. 그 건조하면서도 기분나쁜 셔터 소리가 어슴푸레 잠이 든 어부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어부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담배갑을 찾았다. 그러나 그 어부가 담배갑을 찾기도 전에 관광객이 서둘러 그 어부의 코 앞에 담배갑을 하나 들이댔다. 그리고는 어부의 입에 바로 물려주지 않고 손에다 놓아주는 것이었다. 곧이어 성냥불을 그어대는 네번째 치익 소리. 그렇게 해서 지나칠 정도로 공손한 행위는 끝이 났다.
거의 생각할 수 없는 그리고 결코 보여줄 수도 없는 그 친절함으로 해서 어부는 당황하면서도 화가 났다. 그 지방의 방언에 익숙한 그 여행객은 대화를 통해 그 벽을 뛰어 넘으려 했다. "당신 오늘 고기 많이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어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사람들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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