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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 만큼 대담하게 여자의 외도를 그리고 있는 영화 <미몽> |
<미몽>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한국영화사를 1936년으로까지 앞당겼다는 것이다. 영상자료원이 보관하고 있던 기존의 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38년작 <군용열차>였는데, 그것보다 2년이란 시간을 앞당겼다. 그런데 <미몽>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단지 2년이란 시간을 앞당겼다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통해 조선의 발성영화 초기 모습을 온전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조선에서 발성영화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35년이다. 무성영화만 만들다가 밀려오는 미국의 발성영화에 대처하기 위해 조선영화인들도 발성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본, 기술, 노하우가 없던 조선영화인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발성영화를 두고 영화인들이 논쟁을 벌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36년에 만들어진 <미몽>은 바로 이런 발성영화 초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시 기록을 보면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의 기술이 매우 조악하다고 하는데, <미몽>을 보면 이것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배우들의 대사는 대화를 주고받는다기보다는 마치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훈련이 덜 되었고, 동시녹음을 해야했던 상황 때문에 카메라 이동도 거의 없어 경직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파격적인 것은, 오늘날 보아도 놀라울 만큼 대담하게 여자의 외도를 그리고 있는 내용 때문이다. 허영기가 있었던 부인은 남편과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와 정부와 호텔에서 거주한다. 그러다 정부가 돈 많은 한량이 아니라 가난한 강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과감히 그를 경찰에 고발하고 만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고귀한 사명처럼 여겨졌던 당시에 이렇게 파격적이 내용을 다루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반도의 봄>, 기업화를 통한 신체제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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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의 기업화를 주장하는 영화 <반도의 봄> |
일본에서 유학한 이병일이 연출한 <반도의 봄> 역시 매우 흥미로운 영화이다. 먼저 이 영화는 영화 속 영화 <춘향전>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제시기 영화제작 관행과 상영 형태를 볼 수 있다. 배우와 감독이 한옥을 한 채 세내어 합숙하는 모습이나, 당시 자본을 투자하는 이들의 파렴치한 관행적 모습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다큐처럼 제작된 종로의, 1940년대 초의 극장가 풍경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형식적으로 드러난 <반도의 봄>은 멜로 영화이다. 배우를 지망해서 서울에 올라온 주인공과 이를 후원하는 남성의 사이에 다른 여성이 들어오면서 삼각의 축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외형적으로 드러난 멜로적 요소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멜로의 외피를 쓴 이 영화가 주장하는 것은 결국 조선영화의 기업화이다.
어렵게 하루살이를 하듯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대자본이 들어와 안정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업화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거금을 투자해 영화사를 만드는 것이 나오고, 마지막 장면은 일본의 영화사를 조선의 사절로서 답사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1940년 조선영화령이 조선에서 실시될 때 총독부가 내세운 것은 조선영화의 기업화였다. 사실 발성영화가 등장한 1935년경부터 조선에서는 기업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무성에 비해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는 발성영화를 안정적으로 제작하려면 무엇보다 자본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난립하는 영화사를 두고 심지어 방임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사를 통합한 국책회사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등장하면서 배우들을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굶주리던 이들에게는 ‘환상적인’ 조건인 것이다.
<반도의 봄>은 바로 총독부에 의한 영화의 기업화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거대 기업을 만든 뒤 황국신민과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것도, 당시의 관행이라기보다는 치밀한 전략으로 보인다. 제목인 <반도의 봄>도 영화기업화로 인해 조선영화계에 봄이 왔다는 것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해협>, 징병제 수행의 적극적 친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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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을 위한 징병제를 찬미하는 영화 <조선해협> |
박기채가 연출한 <조선해협>은 대동아공영권의 전쟁동원을 위해 징병제를 찬미하는 노골적인 친일영화이다. “영화기업에 입각한 최초의 작품”인 이 영화는 징병제가 가족문제까지도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신분이 낮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나와 살던 주인공이 형의 전사 소식을 듣고 지원병에 입대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다소 안이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의 아내 역시 지원병이 된 남편을 통해 자신도 애국반에 지원해 일하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다.
모든 언어가 일어로 구성된 이 영화가 특이한 것은 가족문제를 친일문제와 결부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가문을 중시하는 조선의 전통이 명예롭게 죽는 걸 강조하는 무사도로 일순간 바뀌어 버리지만, 그 안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라는 가족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재미있는 것은 영상자료원에서 함께 이 영화를 본 많은 노년층은 군국주의 관점을 중시 여기는 게 아니라 가족 멜로드라마에 중점을 두고 본다는 것이다).
친일영화는 징병제가 실시되기 전과 실시된 후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대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위해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보여준다면, 후자의 영화는 이미 내선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기쁘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해협>은 후자의 전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영화를 보는 것
옛날 영화를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먼저 우리가 살았던 과거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미몽>에서 조택원무용단이 직접 출연해 무용을 하는 장면이나, <반도의 봄>에서 당시의 영화촬영 풍경과 영화상영 전에 배우가 무대에 올라가 주제가를 부르는 당시 상영 장면, <조선해협>에서 한강에서 뱃놀이를 하거나 고궁을 거니는 장면 등을 지금 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것이다. 그뿐인가.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당대의 스타를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만 읽었던 과거의 영화기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기쁜 일이다.
그러나 영화 도입기가 식민지였던 우리에게는 이런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일제 말기 영화는 군국주의 파시즘에 기여한 영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우리의 어두운 과거도 보아야 한다. 나에게 세 편을 보는 시간은 흥분과 치욕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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