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eyes/issue
2006. 3. 5. 07:53

진한 코발트색의 표지와 그 색을 담고 있는 설산의 사진이 강렬하다는 느낌 뿐,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나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깜냥으로도 이건 산과 관련된 책이었으니까.
올 초, 그 책에 손이 갔고 자장면을 먹듯 후루룩 읽어버렸다. 그러나 그 자장면은 단지 공복감을 채워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산악문학이라는 단어도 그 책을 통해 처음 접했지만, 리뷰와 에세이를 절묘하게 조합시키는 방식의 이 독특한 책 속에는 내가 일찌기 느껴보지 못한 숨막히는 산들이 끝도 없이 솟아나, 이어지고, 숨을 쉬고, 손짓하고 있었다. 산과 연애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순간이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싫어지고, 그 공백을 산이 채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때 했다.
그러다 또 우연히, 정말 우연히 [엄홍길의 약속]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역시 짬뽕을 먹듯 시원하게 읽어버린 책이었다. 짬뽕의 끝은 장엄함이었다. 2004년 5월 18일, 에베레스트 초모랑마 등정에 성공한 후 하산 길에 사망한 산악인 박무택과 실종된 장민, 백준호. 동지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하여 1년 후 조직된 18명의 전사, 그 전사 중 한 명이 세계초유의 휴먼원정대를 기록한 책이 바로 약속이었다. 어찌 이 산 사나이들의 이야기가 장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두 권의 책에 속칭 “삘”을 받아, 그 주에 한라산을 다녀오고, 등산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이어서 계속 내 주변에 벌어지는 산악인과의 우연한 만남, 계획에도 없던 산 관련 책과 사진 등을 보며 이건 어쩌면 카르마, 즉 업 일지 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궁금했다. 그것이 호기심이든 순간의 열정이든 진짜 카르마든 애초 내 맘에 산을 자리잡게 해준, 저 두 권의 책을 쓴 사람, 심산이라는 자는 누구일까?
그의 사이트에 가서 이력을 살펴보니, 아!
우리 영화사에 하나의 전설로 남아있는 그 영화, [비트]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심산이란다. 우울한 청춘의 실패를 다룬 영화로 정우성, 고소영, 임창정, 유오성을 스타로 만들었고 이 땅의 수많은 청춘들에게 터널 속 암울함의 공감과 속도 붙은 오토바이의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해줬던 [비트]를 쓴 사람. 그리고 이어서 [태양은 없다]의 시나리오까지.
게다가, 홈페이지 어느 한 쪽에 그가 커밍아웃한 그의 정체성은 '한량'이라고 한다. 세상아, 나 좀 그냥 놔둬라. 혁명은 너희들이 하고, 나는 그냥 산과 함께 즐길란다. 개인주의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나는 실제 개인주의자니까. 그러나 이 세상은 혁명가보다 한량들이 늘어날수록 행복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는 스피릿을 보고, 또 "삘" 받았다.
만나보자,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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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모 주점. 먼저 도착한 심산 씨는 등반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등산용 티셔츠에 자켓을 입고 등산화를 신고 앉아있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술이 등장하고 인터뷰가 이어졌다.
뚜벅이(이하 뚜): 꼭 만나고 싶은 분을 뵙게 되서 반갑다. 정확히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심산 (이하 산): 신촌에서 심산 스쿨이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다. 그 동안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 왔는데, 작업해왔던 것을 체계화도 하고 확장도 해볼까 해서 내친김에 사업체를 하나 만들었다. 일종의 작가 에이전시다. 글쓰기에 대한 강의도 하고 신인 작가들이 일할 곳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스터디를 병행하면서 내부 스토리 그룹을 구성해서 창작물을 만들어 보려고도 한다.
뚜: 그 곳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산: 내가 관심이 있는 산악문학 장르의 작업을 전문적으로 파고들 공간이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공동대표, 한국 시나리오 마켓 운영위원장도 맡게 되어서 겸사겸사 큰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뚜: 산악문학이라는 말이 생소하다.
산: 여행문학이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면 산악문학은 어찌 보면 여행문학의 하위 개념이다. 여행문학, 일테면 기행문, 여행 에세이 등이 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산악문학은 여행 중에서도 산과 등정 행위만을 주제로 한다. 그러나 산서(山書)라고 해서 오직 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대자연에 맞선 인간의 드라마와 그 희로애락의 파노라마가 산서의 세계 속에 펼쳐져 있다.
그의 책, 마운틴오딧세이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답사여행이나 예술품의 감상에서 흔히 거론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산의 세계에서도 에누리 없이 적용된다. ‘북한지’를 읽고 오른 북한산이 보다 풍요로우며, ‘최초의 8천 미터 안나푸르나’를 읽고 떠나는 안나푸르나 트래킹이 보다 설레는 것은 정한 이치다. 산에만 오르고 산서를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의 산행이다..(중략)..그것은 시보다 시적이고, 소설보다 흥미진진하며, 영화보다 드라마틱하고,철학책보다 심오하다."
그가 생각하는 산악문학에의 깔끔한 개념정리다.
뚜: 나도 올해 심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나서 자꾸 산이 떠오르고 산으로 가고 싶어진다. 이상한 일들만 연이어 발생하고, 그래서 이건 카르마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 카르마 맞다. 이제 청장 인생도 끝난 거다. 이 세계에 발을 붙이면 빠져 나오기 힘들다. 이번 세상은 포기하고 다음 세상에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웃음)
뚜: 솔직히 몇 권의 산서를 읽은 것 외에 나는 아직 산에 미친 정도도 아니고, 내가 정말 산에 미칠 것인지도 긴가민가 하긴 하다.
산: 미칠 거다. 분명히. 거기다 만약에 히말라야 트래킹을 갔다 오면 불치병이 된다. 1년에 한번씩 안 가면 삶의 의미도 없어지고..
뚜: 심 선생님은 산악문학을 먼저 알게 되고 산을 좋아하게 됐나, 아니면 그 반대인가?
산: 그건 정확하지 않다. 그 두 가지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건 사실인데 어느 쪽이 먼저 인지는 모르겠다. 산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잘 다녔다. 그게 20대 때 딱 끊겼다. 그때는 산을 가는 것이 민족의 반역과 같은 것이었다. (웃음)
뚜: 민중이 위기에 처했는데 한량 짓 하지 마라?(웃음)
산: 그 때는 그랬다. 학교에서 돌 던지고 공장에서 노동 운동하는 것이 식민조국에 태어난 청춘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련이 망했다. 그때 혼란이 오더라. 난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그때 정식으로 암벽등반을 배웠다. 너무 재미있었고 산악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정말 한량이었다. 한량들은 시야가 참 넓더라. 나는 주사파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그 사람들은 알래스카에 빙하가 녹고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더라. 그런데 그 모습이 참 매력적이더라. 이혼하고 돈도 없고 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보기 좋았고 지금도 그 쪽 사람들과 가장 친하다.
그 땐 그랬지..(그의 사무실에서)
뚜: 운동가에서 산악인의 변신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말한 한량들이, 처음에는 너무 개인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만도 한데.
산: 학교 다닐 때 내 선배 한 명이 대학 산악회 최초로 1983년 알프스를 갔었다. 나는 그때 돌 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있었는데 그 선배는 배낭을 메고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더라. 그때 나는 ‘ 저런 개xx가 다 있어?’ 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내 맘 한 구석에는 그들이 멋져 보였다. 알프스를 가기 위해 3년씩 훈련하고 돈 모으고 2달 동안 신나게 등정하고 오는데, 은근히 멋져 보였던 거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몸에 흐르는 피는 혁명가 보다는 산악인 쪽이 아니었나 싶다.
뚜: 우문이겠지만, 심 선생님은 왜 산에 가는 것인가?
산: 산에 간다는 건 내겐 균형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도시생활에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일들도 산에 가서 생각하면 사실 별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각적으로도 콘크리트 속보다는 공기 좋고 별도 많은 산이 좋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지옥으로 돌아오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순환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나더러 왜 산에 가냐고 누가 물으면 그럼 넌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고 한다. 사는 과정 자체가 좋아서 사는 거 아닌가. 살기 싫으면 죽어버리면 되지. 난 산에 가는 과정 자체가 좋은 거다.
이 사람 참 담백하다. 단선 구조로 중심을 딱 잡아놓고 주변의 곁가지를 생둥생둥 쳐나간다. 좋아서 사는거구, 재미있으니까 산에 가는거구, 그게 아니라면 죽거나 안가거나.
뚜: 그런데 나는 산에 대해 일종의 부담감도 있었던 것 같다.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리 같은 격언과도 비슷한 건데, 산은 무조건 정상 정복을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중압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재미를 느끼기 보다는 어떤 숙제를 해야 하는 것 같은 무거움이 있었고 그것이 내가 일찍이 산과 연애를 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면 숨이 막히니까 외면하는.
산: 충분히 공감한다. 우리의 지배적 등산관은 독일병정스타일이다. 무조건 올라가서 태극기를 꽂아야 한다는 식이다. 우리 등반의 역사가 바로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를 회상해보자. 고상돈 같은 선배는 에베레스트 다녀오면 나라에서 카 퍼레이드 해주고 훈장도 주고 그랬다. 물론 이건 우리만 그런 건 아니었다. 영국도 1920-30년대에는 여왕이 나서서 등반가에게 돈 주고 독려하고 했다. 그러다 60년대부터 히피족이 생겨났다. 국위선양 그런 건 난 몰라, 그냥 혼자 갈래 이러고 배낭 메고 간 거다. 지금도 유럽 애들 중에서 독일, 영국 애들은 산을 너무 무겁게 만난다. 존재가 어떻고, 니체가 나오고 한다. 반면 프랑스, 이태리, 미국 요세미티 클라이머들은 “재밌으니까” 이 말 하나로 끝이다.
뚜: 심 선생님은 어느 쪽인가?
산: 나는 가벼운 쪽이다. 산은 좋은 사람과 가야 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고 산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산행 스타일은 이런 식이다. 산을 오르다 경치가 너무 좋으면 바로 텐트치고 술 먹고 음악 듣고 안 움직인다. 도봉산 암벽등반 하다가 날씨 좋지 않으면 해먹 걸고 와인 한 잔 먹고 잔다. 나는 그런 것이 훨씬 좋은 산행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리산을 무박으로 산행했네, 몇 일 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했네,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겠다. 꼭 수출 100억불 달성했다고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인터뷰 중 뚜벅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산을 이렇게 봐도 되는 것인가?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 하고, 산에 오르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남들이 저 산을 8시간만에 올랐다면 나는 7시간 만에 올라야 하는 그런것이 산이 아니었었나? 숨이 목에 차는 한계상황에서 만나는 마라톤의 러너스 하이같은 쾌감, 극한의 순간에 스스로를 객체화시킬 수 있는 경지, 그런 것이 등반의 절대 의미가 아니었었나? 나도 모르는 사이 산이데올로기에 내가 몰입되어있었다는 생각, 그 때 했다.
뚜: 주변의 한량들이 등반에 대해 그런 식의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나?
산: 내 지인들은 거의 그렇다. 메스너 이후 35년 만에 낭가파르밧을 올라간 김창호의 경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등산을 한다. 김창호가 누군가? 카라코럼 지역의 1인자이고 그 지역을 혼자서 8년째 돌아다녔으며 이름도 없는 4-5000미터를 수도 없이 올라간 사람이다. 매스컴에 많이 회자되는 주류산악인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가치를 더 높게 쳐준다. 그런데 그가 소속된 산악회의 이름이 중턱 산악회다. 가다가 힘들면 내려가자, 중턱까지만 가자, 그래서 중턱이다.
뚜: 작년에 휴먼원정대 18인중 한 명이었는데 거기는 어떻게 참여를 한 것이었나?
산: 산에서 죽은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자는 명분이 너무 훌륭했고 그래서 꼭 참여를 하고 싶었다. 나는 그 원정 이후 그것과 관련된 책을 내겠다는 약속으로 참여를 하게 됐는데 에베레스트는 나도 너무나 가고 싶었던 곳이고, 그러나 그곳을 가려고 하면 현실적으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 3명이 가면 약 8천 만원이 들고 거기에 항공료 등을 더하면 상당한 액수가 드는 것이다. 휴먼 원정대는 8억짜리 프로젝트였다. 어찌 보면 나는 거기에 무임승차를 한 것일 수도 있다.
뚜: 결국 시신을 돌무덤에 안치했고 두 사람의 시신은 아직 못 찾았는데, 재 원정을 할 계획은 없나?
산: 재시도는 불가능하다. 사상 초유라는 건 그 동안 산악인들이 그런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혼자 몸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걸 성공 하느냐도 운명에 맡겨야 할 일인데, 돌덩이가 되어버린 시신을 수습해온다는 발상 자체가 사실 미친 짓이다.
뚜: 조난 당해 죽은 사람을 찾으러 간 원정대도 조난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
산: 산에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등정을 성공 하느냐도 그렇지만 살아 돌아 오느냐도 절반은 내 손을 떠난 문제다. 다들 미친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간 것이다.
휴먼원정대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 거침없던 심산의 목소리가 많이 차분해졌고, 느려졌다. 말을 아끼는 듯한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왠지 건너뛰고 싶어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얼마 전 출연한 라디오방송에서도 비슷한 해프닝이 있었다. 그가 휴먼원정대의 이야기를 써서 묶은 [엄홍길의 약속]을 소개하는 아침 6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수습과정을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우연찮게 방송을 듣던 나는 방송사고인가? 의아했는데 몇 초 정도 지났을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디제이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바람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그의 상태를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기자의 직감이라고 할까? 단지 그 장엄한 과업에의 소회로 해석하기에는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은 예감, 그래서 짓궂게 파고 들었다.
뚜: 미안한 이야기지만 만일 작년에 MBC 다큐멘터리를 통해 휴먼원정대를 보지 않았다면 책을 통해 더 한 감동이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티브이를 보고 나서 만난 심선생님의 책은 그 방송의 대본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가졌다.
산: 정확히 잘 본 것이다. 사실 휴먼원정대에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것도 많다. 그런 이야기를 책을 통해 다 할 수가 없었으니 책이 좀 밋밋했었을 수 있다.
뚜: 일부에서는 방송과 신문이 개입되면서 너무 상업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있던데, 혹 그런 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산: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부분이 애초 의도한 휴먼원정대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휴먼원정대에 관해서는 외국에서 더 많이 인정하고 한국은 깎아 내린다. 정상에 가면 너무나 많은 외국인 시체가 있다. 산악인들은 이제 무뎌져서 시체를 보고도 돌맹이를 보는 느낌을 가지고 툭툭 차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목숨을 담보하고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간 것이다. 엄홍길 대장이 휴먼원정대로 단 한푼의 개인적 이익을 취한 것도 아니다.
물론 냉정히 말한다면 거기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우정과 의리등의 명분 말고도 다 자기 나름대로의 개인적 이익을 계산했을 것이다. 방송은 시청률을 계산했을 것이고 나도 산악작가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고 싶어서 함께 간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도 순수성 운운 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뚜: 그렇다면 심선생님이 책에서 하지 못한 가슴속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산: 일종의 환멸일 수 있는데, 100일 동안 원정대와 함께 하면서 환멸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이것은 철저하게 나의 성향이 야기한 감정이다.
뚜: 어떤 성향인가?
산: 나는 스스로를 한량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주의적이고 집단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을 것 제대로 못 먹는 그런 상황에서 남자들끼리 100일 동안 함께 있었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겠나?
그리고 나는 규율을 아주 싫어하는데 그런 원정은 완전히 군대식일 수 밖에 없다. 엄홍길 선배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런 원정을 나가면 산악대장은 국방부 장관의 파워를 가진다. 아니 그 보다 더한 신이다.
원래 내 산행스타일이, 재미있을 때까지만 하자인데, 카메라 돌아가니까 그럴 수도 없었고. 원정이 끝나고 나서 마지막 쫑파티 때 원정대들끼리 술 먹고 한판 진하게 붙었다. 다들 맺힌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뚜: 그런 기억이 있는데도 책을 통해서는 장엄함의 코드를 끌어내려 했으니 힘도 들었겠다.
산: 엄홍길 선배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마치 황우석처럼 너무 훌륭하다고 영웅시하고, 또 일부에서는 아주 비하 하기도 한다. 내가 볼 때 그는 영웅도 아니고 비난을 받을 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휴먼원정대의 기록에서는 진실의 사각지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타 엄홍길을 계속 유지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애초에 내가 원정대쪽에 한 약속이었으니까.
뚜: 지금 그들과는 계속 만나나?
산: 그게 악마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다음부터 절대 안볼 거야 라고 다짐하지만 몇 달 지나면 또 슬금슬금 서로를 찾게 된다. 지금도 두 달에 한번씩은 정기 모임을 갖는다. 심산 스쿨을 열 때도 모두 다 와줘서 진하게 술을 먹었었다.
방송에서도, 책에서도, 마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의 비장함을 풍기며 비쳐졌던 100일의 기록 속에서, 인간들이기에 당연히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취향, 의견, 길들이고 길들여짐의 갈등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산이라고 해서 사람들을 도사로 만들 재간이 어떻게 있었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전쟁속에서도 일상의 꽃이 피 듯, 원정도 그렇다고 한다. 텐트를 날릴 듯 불어오는 고지대 혹한의 바람속에서도 밤이면 술 사주기 카드를 치고, 위성으로 축구게임을 다운 받아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기도 하고.
그를 만나기 전 꼭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는 어쩌면 산이라는 취미와 글쓰기라는 직업을 절묘하게 연결시킨 일종의 행운아일 수 있는데, 과연 실제 그는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즉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으로 밥도 먹고 산다는 그 꿈 같은 공식에 대한 그의 생각.
뚜: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과 관련된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 이 두 개가 항상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나는 카메라도 안 가지고, 어떤 특별한 계획을 정하지 않고 여행 그 자체를 즐기고 싶은데, 일이 개입되는 순간 여행 속에서 글의 주제를 찾는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해한다. 산을 좋아하면서 산악문학을 하겠다는 심선생님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즉 글을 써야 한다는 것으로 인해 산 자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산: 그 고민은 나도 너무나 절실히 하고 있고, 여전히 고민 중이다. 2004년이 돈 받고 글쓰기의 피크였었다. 일간지, 월간지, 주간지 등 거의 매일 마감이었다. 그러다 지쳐버렸다. 산을 어떤 밥벌이의 목적이 아닌 순수한 연애대상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에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산행을 다녀와도 거기에 대해서 글을 쓰지 않으니 너무 좋았다. 올해는 매주 목요일 모 일간지 전면에 산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은 진행 중이며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뚜: 마운틴 오딧세이는 숙제였나? 아니면 작가의 열정이었나?
산: 그 책은 쓰면서도 너무 재미있었고 쓰고 나서도 만족감이 큰 책이었다. 원고료도 없었고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좋아서 쓴 책이었다. 4쇄 까지 찍었다고 하니 결과도 좋았고 그 부분의 스테디셀러가 된 것도 기분이 좋지만 일단 마운틴 오딧세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앞으로 7권까지 낼 계획이다.
뚜: 산악문학 리뷰를 7권까지 낼 정도로 대상이 되는 산악문학이 많은가?
산: 50권까지도 낼 수 있다. 물론 나의 경우 5권까지는 문학을 대상으로 하고 나머지는 산악영화, 산악 음악 등을 주제로 쓸 계획이다.
뚜: 그래도 돈은 되야 할 것 아닌가(웃음)?
산: 앞으로는 산악 문학이나 영화나 미술이나 하는 부분들이 현재 순수 문학이나 대중 영화처럼 큰 시장을 형성할 거라고 본다. 빠르면 10년, 20년 안에는. 어쩌면 더 빨리. 스테디셀러는 있어도 베스트셀러는 아직 없지만, 산악문학작품도 언젠가는 전체베스트셀러가 나올 것이다.국제 산악영화제 같은 것도 구상하고 있다. 부산영화제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의 시장을 형성할거라고 본다.
뚜: 하긴 산악 마니아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것 같고 그렇다면 그 쪽 부분도 전망이 분명히 있을 것도 같다.
산: IMF이후에 가장 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등산장비관련 업체들이다. 실업자도 늘어나고, 전반적으로 가계 수입이 줄면서 돈이 많이 드는 골프 같은 것보다 가까운 산에 가게 된 현상과 관련이 있기도 할 것이다. 전 세계에 등산 월간지가 3종이나 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산에 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은데, 그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게 문젠데, 그래도 순수 문학잡지보다는 훨씬 많이 읽을 것이다. 조만간 이쪽이 제 시장을 찾게 될 거라고 본다. 산악잡지에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드문 상태라 그게 더 급한 문제다.
뚜: 여행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산: 트래블 라이터 travel writer는 해외에서는 무척 각광 받는 직업인데, 브루스 채트윈이나 빌 브라이슨 같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여행작가다. 여행작가들에게 있어 최고의 지면이라면 내셔널 지오그래피 같은 잡지가 될 텐데 그 사람들의 특징이나 공통점을 보면 여행정보를 다루는 비중은 아주 적다. 대신에, 뭐랄까. 고급스러운 에세이를 쓴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사진의 품질도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사진을 찍고 여행한 지역에 대해 고급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행작가라고 하면 대부분 기차 타고 몇 시간 가면 뭐가 나오고... 하는 정보 위주라서 여행작가라는 분야가 특화되었다고 볼 순 없다. 최근엔 김산환, 이지상, 허시명 같이 주목 받는 여행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여행문학도 발전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뚜: 나도 심선생님처럼 여행서 리뷰 책이나 하나 써야겠다. 트래블 오딧세이라고.
산: 그거 대박 날 거다. 그때 인세 1프로를 나에게 달라. (웃음)
뚜: 혹시 여행서나 산서 등, 이쪽 관련 글을 쓰고 싶어하는 초심자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나?
산: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건 사실. 글을 못쓰면서 잘 쓰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긴 하다.(웃음) 하지만 뭐 어디 갖다 팔 것이 아니라면 자기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나아질 것이다. 정서도 뛰어날 뿐더러 글도 잘 쓰시는 분, 임현담 같은 분들은 히말라야에 관한 멋진 글을 많이 쓰셨다. 인도나 힌두교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기도 하면서.
가족끼리 주말 여행 다녀와서 홈페이지에 남기는 정도의 글을 쓸 수도 있는 건데, 어쨌든 간단하게 조언을 한다면 '정보에 치우치기 보다는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낫다'는 말 밖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글쓰기에 관한 그의 경력은 다채롭다.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두 편의 장편 소설을 썼고, 극장에 걸린 세 편의 영화와 극장에 걸리지 못한 수십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시나리오 가이드]라는 영화 작법서를 번역했으며 그 자신의 워크샵 강의록을 옮긴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와 본 인터뷰에 등장한 산악문학의 필독서, [마운틴 오딧세이]도 썼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썼다'고 보기엔 대중성의 재료를 선택했다고 볼 수 없는데, 그는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자신의 취미를 이용한 돈벌이용 글쓰기는, 순수를 상업에게 파는 것이 아니며 '충만한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단호한 입장 정리.
뚜: 노매드에도 한량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여름이면 계곡에서 탁족을 즐기면서 엇박자 세상을 향해 " 네 이놈들" 하고 호통을 치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산도 아주 좋아라 한다.
산: (웃음) 오호 그런가? 그럼 이런 건 어떨까?
내 주변에 국내랭킹 3위안에 드는 한량 중 손재식이라는 클라이밍 사진가가 일을 꾸미고 있다.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베이스캠프까지만 가는 여행인데, 정상을 올라가는 건 전문 산악인들이 하는 일이고 노는 것은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것이 더 재밌다. 첫 번째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는데, 현재 10명이 모여있다. 15명이 되면 떠날 것인데, 물론 이건 앞으로 2-3년 동안 계속 할 것이지만 이런 거 노매드 한량과 함께 하면 재미있겠다. 몇 주를 가야 하는 거니까 일반 직장인이 참가하기는 쉽지 않지만 초보자라도 무리가 없는 트래킹 코스다.
뚜: 우리 한량들이 알면 아주 좋아하겠다. 그들은 6월에 코타키나발루의 키나발루 산을 등정한다고 하더라.
산: 나도 거기는 가봤다. 하룻밤 산장에서 묵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백운대보다 가파르지 않다. 올라가는데 6시간 정도 걸리고 그냥 한라산 등반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등산도 하고 바닷가에서 며칠 쉬고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뚜: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산: 노매드 독자들에게 어깨동무를 홍보하고 싶다. 히말라야 어깨동무는 히말라야 지역 오지마을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매달 1만원씩의 곗돈을 모아 히말라야 지역의 특정 마을에 보내준다. 2004년 1월부터 시작된 모임이고 현재 약 9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내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1만원 이상은 받지 않는다. 현재 그렇게 모인 곗돈들이 두 달에 한번씩 낭기 마을에 전달되고 있다. 그 돈은 히말라야 오지마을 사람들이 학교를 짓고, 기숙사를 세우고, 마을회관을 보수하는 일에 쓰여진다. 3년 간 한 마을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3년 후에는 새로운 지원대상 마을을 선정한다. 히말라야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가입하실 수 있다. 내 홈페이지 www.simsanschool.com 나 히말라야 어깨동무 공식 홈 www.himalfellow.or.kr 를 참고하면 된다.
녹취를 위해 켜놓은 녹음기를 끄고 본격적인 술을 마시며 문학과 영화와 산을 포함한 수다가 진행됐다. 무라카미류의 오지랍 넓은 글쓰기와 하루키의 자폐성을 이야기했고 , 심산 스스로 류쪽에 더 가까운 글쓰기라고 했으며, 그 영화, [비트]를 가지고 많이도 떠들었다. 고소영은 슈팅 사인 1분전까지 새우깡을 먹고 깔깔거리다가도 슛 사인만 들어가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천상 배우라는 이야기부터 정우성은 너무나 많은 매력이 있어서 단지 잘생긴 배우로 평가되는 건 억울한 일이라는 것 까지, 그 자신 심산이 이번에 개봉된 음란서생에서 신흥배급업자로 두 씬을 출연했다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마치 유연한 산의 흐름처럼 막힘 없이 진행되었다.
산이 카르마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에게서 소년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세상사에 계산적이지 않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충동적이고 그래서 눈빛이 맑다. 이런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 술이 취하지 않는다. 산의 기운이 그들에게 옮아있고 아주 조금이라도 그 기운이 술자리에서 감염되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도, 무라카미류가 쿠바를 지칭해서 썼던 그 표현을 오마쥬한다면, 산은 결코 인간이 인간에게 응석을 부릴 수 없게 하기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응석을 부리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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