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책임은 정부에 있죠. 정부가 계속해서 스님에게 단식할 수 있는 명분을 준겁니다. 스님은 4년 내내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주장했는데, 정부는 한번도 들어주지 않았죠. 정부는 합의했다가도 어기고 일방적인 조사만 해온 겁니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왜 천성산 지키기에 목숨을 건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천성산대책위 관계자가 내놓은 말입니다. 지율 스님은 지난해 말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등에서 천성산 터널공사를 생각하면 '자식을 군대에 보낸 심정'이라 말했습니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보지 않은 비구니 스님이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지율 스님에게 천성산은 곧 자신의 피붙이였던 겁니다. 자신의 피붙이 같은 산에 구멍을 뚫으면서 정확한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요즘 지율 스님의 오랜 단식 사실이 알려지면서, 왜 지율 스님이 '천성산 지키기'에 목숨을 거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지율 스님 더러 '너무 집착한다'며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지율 스님이 해온 주장들을 보면 '집착'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001년 국토순례부터 시작
지율 스님은 4년 전 천성산 임도개설공사 현장을 보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시작했습니다. 그 뒤 고속철도가 천성산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알고 본격적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뛰어들었습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2001년 국토순례를 시작으로, 2002년 7월 삼보일배를 했습니다.
스님은 2003년 두 차례 단식(38일, 45일)에 이어 부산시청 앞에서 8월 한 달 동안 매일 3000배를 했으며, 부산역~천성산 화엄벌 구간에 걸쳐 삼보일배를 했습니다. 또한 스님은 2004년 영산 개곡마을에 있는 천성산 터널공사현장에서 100일간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 유치장에 수감되었고, 2004년 6~8월 58일간 청와대 앞 단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부도 천성산 터널공사에 따른 환경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정부측은 1994년부터 2003년 사이 세 차례의 환경 검토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1994년 '최종보고서'와 2003년 대한지질학회의 '자연변화 정밀조사 중간보고서', 노선재검토위원회의 '검토보고서'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정부측의 보고서를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들은 '의도적 누락'이 많다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지적은 이미 여러해 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녹색연합은 2003년 10월 "보고서는 천성산 지역의 천연기념물과 환경부 지정 법정보호종이 단 한 종도 없다고 했는데, 천성산에 자생중인 환경부 지정 법정 보호종은 30여종 이상이고, 보호야생식물은 19종이나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측은 환경단체의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동화 같은 일 일어나야 세상은 바뀐다"
지율 스님은 이번에 100일 가까이 물과 차만 마시는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지난해 8월 말 정부측과 '전문가 검토'를 거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도롱뇽 소송' 항고심 재판부도 '현장감정'까지 실시하기로 하고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그런데 환경부는 '현장감정'을 며칠 앞두고 '독자 검토'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 검토'를 하기로 한 정부측이 한마디 의논도 없이 독자적으로 검토보고서를 냈던 것입니다. 이에 지율 스님은 반발했고, 전국 환경단체도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재판부는 선고하기 이전에 조정안을 냈는데, 이것도 지율 스님측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재판부 의견은 공사는 계속 진행하며 환경성 검토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롱뇽소송에는 '공사금지가처분 신청'도 들어 있는데, '공사 계속'을 조정안으로 낸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환경부의 '독자 검토안'이 나오자 지율 스님은 지난 해 10월 27일부터 부산시청 앞에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재판부의 조정안이 나오자 단식 장소를 부산고법 앞으로 옮겼고, 선고 직전 청와대 앞으로 갔습니다.
지율 스님의 늘 강조해 왔습니다. "대통령이 공사 백지화 공약을 백지화하고, 청와대 수석과 장관이 전문가 검토를 거치기로 합의해놓고서 약속을 어겼는데도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가 더 문제"라고 말입니다.
스님은 최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천성산 살리는 일이 동화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동화 같은 일들이 일어나죠. 소송을 처음 진행할 때는 담당할 변호사도 구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변호사가 환경전문가의 실력을 갖추었죠. 돈이 좀 들면 어떻고, 시간이 좀 걸리면 어때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나야 세상이 바뀌는 거죠."
지금 지율 스님측의 단식해제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토목공사는 진행하되 발파공사는 3개월간 보류할 것'과 '3개월간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이전에 지율 스님측이 공사 전면 중단과 4계절의 환경변화를 살피기 위한 1년간 환경평가를 요구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지율 스님은 두 가지 조건으로도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우리 정부는 두 조건을 들어줄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없을까요./윤성효 기자-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