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xt 2004. 9. 12. 12:09
[고학년/이야기] 발행월 : 96년 06월


통일 말하기 대회


이중현/경기 남양주 장현초등학교 교사


내일 특별활동 시간에 ꡐ통일 말하기 대회ꡑ를 하겠어요. 희망하는 사람?ꡓ

선생님은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ꡒ누구라도 좋아요. 통일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이면 다 좋아요.ꡓ

ꡒ상철이요. 상철이.ꡓ

상철이는 가만히 있는데 몇몇 아이들이 상철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상철이는 지난번 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아이입니다.

“그래, 상철이 생각은?”

선생님은 상철이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습니다.

ꡒ네, 해 보겠습니다. 반 대회이긴 하지만…….ꡓ

ꡒ또 다른 사람?ꡓ

그러나 희망하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상철이만큼 잘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ꡒꡐ통일 말하기 대회ꡑ는 말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어요. 우리 반 모두 대회에 나가도 돼요.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니까요.ꡓ

선생님은 한 사람만 희망하는 것이 몹시 안타깝나 봅니다.


그때였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동석이가 손을 슬그머니 들었습니다.

ꡒ어, 동석이. 그래 동석이가 하겠다는구나.ꡓ

선생님은 반가운 듯이 동석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친구들 눈이 한꺼번에 동석이에게 쏠렸습니다. 동석이 얼굴이 갑자기 빨개졌습니다.

친구들이 한바탕 웃었습니다. 상철이한테는 턱도 없다는 웃음입니다.

동석이는 더욱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상철이는 아침부터 통일 말하기 대회 원고를 외웠습니다. 가끔 손짓도 해가며 연습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주위에서 연습하는 상철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편, 동석이는 원고를 다 외웠는지 연습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ꡐ통일 말하기 대회ꡑ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커다랗게 ꡐ통일 말하기 대회ꡑ라고 썼습니다.

ꡒ자, 상철이 먼저 나와서 해보세요. 다른 친구들은 바른 자세로 잘 듣고 박수 많이 쳐 주세요.ꡓ

ꡒ여러분, 저는 오늘도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ꡓ

상철이는 자신있는 표정으로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동석이는 처음부터 기가 질렸습니다. 상철이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웅변하는 자세가 딱 잡혔습니다.

ꡒ……그러므로 우리는 첫째도 힘, 둘째도 힘, 셋째도 힘을 길러 북한 공산당을 이기는 것이 통일의 길이라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합니다.ꡓ

상철이가 불끈 쥔 두 주먹을 높이 쳐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웅변을 끝냈습니다. 친구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상철이도 만족스러운지 친구들을 둘러보고 자기 자리에 가 앉았습니다.

ꡒ다음은 동석이.ꡓ

선생님이 동석이 이름을 부르자 친구들은 웅성거렸습니다. 동석이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ꡒ저희 할아버지는 북한에 계십니다. 지금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생신날 맛있는 밥과 반찬을 차려 놓습니다.ꡓ

동석이가 이야기하자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요란한 몸짓도 하지 않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말했습니다.

ꡒ그런데 할머니는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올해는 할아버지 생신도 차려 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얼마전 남북한이 서로 오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청에 가서 북한 방문 신청을 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갈 수 없었습니다. 실망한 나머지 할머니는 그만 병이 나셨습니다. 그 병으로 끝내 돌아가신 것입니다.ꡓ

동석이가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ꡒ한 핏줄이라면서 서로 싸우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는 동안에 할머니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차라리 그렇게 되길 빌었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 혼이라도 휴전선을 훌훌 넘어 북한에 계신 할아버지를 만나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ꡓ

동석이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몇몇 친구들도 눈물을 글썽이며 동석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ꡒ저는 상철이 주장과 다릅니다. 남과 북이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고, 욕심 내지 않을 때 통일이 된다고 봅니다.ꡓ

동석이가 절을 꾸벅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친구들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ꡒ와 동석이 대단한데!ꡓ

친구들이 동석이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동석이 짝인 지영이도 동석이에게 엄지를 세워 보였습니다. 선생님도 한쪽에서 빙그레 웃고 계셨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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