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xt 2004. 9. 12. 11:45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발행월 : 우리교육 96년 11월

궤짝 세 개로 왜군을 물리치다


임덕연/경기 안양 호계초등학교


옛날 임진왜란 때 이야기입니다.

충청북도 괴산 땅에 전유향이란 사람이 살았습니다. 전유향의 호가 학송이므로 사람들은 학송  어른이라고 불렀습니다. 학송은 벼슬도 하지 않고 시골에 묻혀 글을 읽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학송 어른도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학송 어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왜놈과 맞서 싸울 준비를 했지만 시골에 묻혀 농사만 짓던 사람으로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송 어른은 꾀를 내어 싸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내 괴산 고을에도 왜구가 쳐들어왔습니다. 왜장은 괴산의 작은 땅을 마음대로 짓밟아 놓으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야 왜구가 사납다고 소문이 나서 다른 고을도 쉽게 쳐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왜구는 닥치는 대로 죽이고, 짓밟고, 불을 질러 댔습니다. 소나 돼지를 보면 죽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왜구는 이렇게 못된 짓을 하면서 괴산 쑥고개에 다다랐습니다. 쑥고개 마루 한 길 한가운데 큰 궤짝이 놓여 있었습니다.

ꡒ장군님, 저기 이상한 물체가 하나 있습니다."

맨 앞서 가던 왜구 졸개가 소리쳤습니다. 모두들 신이나 정신없이 떠들고 장난치며 가다가 멈춰 섰습니다. 싸움 한번 안 하고 쳐들어가니 좀 심심한 왜구도 있었습니다.

ꡒ뭐, 궤짝! 그까짓 궤짝 갖고 웬 호들갑이냐. 어서 부셔 버려라."

왜구들은 궤짝을 발로 밟고, 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두들겼습니다. 왜구들은 쓸모 없는 궤짝이  승리 노래를 부르며 쳐들어가는 길을 막았다고 분풀이하듯 궤짝을 깨뜨렸습니다.

ꡒ악, 아얏! 아이구, 아야!"

궤짝을 깨뜨리던 왜구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러 댔습니다.

“벌이다. 도망가라!"

궤짝 안에는 온갖 벌들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땡삐, 바달이, 왕퉁이, 호박벌들이 갇혀 있다가 궤짝이 깨지자 벌떼처럼 나왔습니다. 화가 난 벌들은 닥치는 대로 물고, 벌침을 휘둘러 댔습니다.

왜구들은 창과 방패를 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습니다. 풀숲으로 도망가는 놈, 나무에 기어올라가는 놈, 도랑에 납작 엎드린 놈 등 삽시간에 난리가 났습니다. 도망가면 도망갈수록 벌은 더 기승을 부리며 날아가 벌침을 쏘아 댔습니다.

정신없이 도망하여 해돋이 마루턱까지 도망갔습니다. 얼굴을 쏘여 퉁퉁 부은 놈, 도망가다 넘어져 무릎팍이 깨진 놈, 물 속에 뛰어들어 옷이 홀딱 젖은 놈. 꼴이 모두 말이 아니었습니다.

해돋이 마루턱에서 한시름 놓고 쉬고 있을 때 한 놈이 또 소리쳤습니다.

ꡒ저기 또 궤짝이 있다."

ꡒ뭐, 궤짝?"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벌떼에 놀란 왜구는 또 궤짝이 있다는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모두들 왜장을 쳐다보았습니다.

ꡒ장군님, 어떻게 할까요?"

ꡒ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저 궤짝을 불 태워라."

ꡒ불태우라고요?"

ꡒ그래, 벌은 불에 약한 법이다."

왜구들은 벌들이 타 죽는 걸 고소하게 구경하려고 궤짝에 둘러섰습니다. 한 놈이 궤짝에 불을 붙였습니다.

ꡒ우루룽 꽝!"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며 궤짝이 폭발했습니다. 궤짝 주위에 있던 왜구들은 모두들  나가 떨어졌습니다. 궤짝 안에는 폭약이 가득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왜구들은 다시 오던 길로 도망을 쳤습니다. 왜장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ꡒ이 좁은 곳에서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는 다 죽는다. 빨리 후퇴하라."

왜장은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뛰는 가운데 모두들 기운을 잃고 터덜터덜 걸을 때였습니다.

ꡒ장군님, 앞에 또 궤짝이 있습니다."

ꡒ뭐, 궤짝!" 왜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ꡒ어떻게 할까요?"

ꡒ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절대 궤짝을 건드리지 말아라. 자, 저 다리를 건너 후퇴한다."

왜장은 기운 없이 샛길에 있는 다리를 가리켰습니다. 지금도 이 다리를ꡐ똥싼 다리ꡑ라고 부릅니다. 왜냐고요. 왜장이 똥싼 아이처럼 어그적어그적 도망간 다리니까요.

그나저나 세 번째 궤짝에는 무엇이 들었을까요? 사실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답니다.

학송 어른은 이처럼 꾀를 써서 왜구를 멋지게 해치운 것입니다.

그 후 왜구들 사이에서는 우송이패(遇松而敗)라는 말이 소문처럼 퍼졌습니다. 우송이패란 ꡐ송을 만나면 패한다'라는 뜻으로 학송 어른을 두고 한 말인데ꡐ송'자만 들어도 왜놈들은 길을 돌아 피해 갔다고 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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