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xt 2004. 9. 12. 11:44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발행월 : 우리교육 96년 09월


어떤 개미 이야기


김제곤/인천 삼산초등학교 교사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여름날, 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길을 가고 었어요. 개미는 입에 제몸보다 몇 배나 큰 먹이를 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어디론가 길을 갑니다.

앞에 커다란 모래 이랑이 나타났어요. 개미는 망설일 것도 없이 그 이랑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랑을 넘자 이번엔 푹패인 골짜 기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건 개미귀신이 파놓은 구덩이였답니다. 그것도 모르는 개미는 골짜기 언덕에 발을 디뎠다가 아래로 그만 주르르 미끌어져 내리고 말았답니다.

ꡒ어떤 놈이 감히 단잠을 깨우는 거냐?ꡓ

무섭게 생긴 큰 집게를 쳐들며 구덩이 속에서 개미귀신이 쑥 올라왔어요.

ꡒ어허, 이건 어린 놈이 아닌가? 감히 겁도 없이 어딜 쏘다니는 게냐?ꡓ

개미는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간신히 대답했어요.

ꡒ저는 저 은행나무 고목 밑에 사는 개미입니다. 지금은 개울 건너 친구집에 먹이를 가져다 주러 가는 길이랍니다.ꡓ

개미귀신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은행나무 고목밑에 사는 개미라면 개울 건너 개미와는 원수지간입니다.

ꡒ이놈, 감히 어디다 거짓말을 하는 게야. 네놈들하고 개울 건너 사는 놈들하고는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걸 내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을 테냐?ꡓ

ꡒ맞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아요. 죽은 지렁이 한 마리를 놓고 일개미끼리 싸움이 붙어 원수 사이가 된 건 맞습니다.ꡓ

ꡒ그런데?ꡓ

ꡒ얼마전 큰비가 와서 개울 건너 개미굴이 온통 물에 잠겼어요.

그 바람에 많은 일개미와 병정개미들이 죽고, 이제 남은 건 병든 여왕개미와 저 같은 어린 개미들뿐이랍니다.ꡓ

ꡒ오호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 그놈들과 원수지간인 너희들은 잘된 일이 아니냐?ꡓ

개미는 고개를 푹 수그리더니,

ꡒ그렇잖아도 어른들은 개울 건너 쪽을 보고 그놈들이 이제 모조리 굶어 죽게 되어 잘됐다고 한답니다. 그걸 축하하는 잔치라도 열겠다고 그러지요.ꡓ

이 말을 마친 개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ꡒ흠, 그럴 만도 해. 너희놈들끼리는 만나면 서로 물어뜯고 죽이고 하는 사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네놈은 먹이를 가져다 주려고 간단 말이냐? ꡓ

개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더니 울먹거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ꡒ물난리가 나기 훨씬 전 개울 근처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조그만 바위 위에 올랐다가 그만 물에 빠졌답니다. 그때 저를 구해준 건 바로 개울 건너 개미굴에 사는 어린 개미였어요. 그애는 저를 보고 우리는 똑같은 더듬이를 갖고 있고, 다리도 여섯 개, 피부도 똑같이 까만데 왜 서로 만나면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너랑은 그냥 동무가 되자고 그랬어요. 그런 친구가 굶어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어요.ꡓ

그 말을 들은 개미귀신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개미 궁둥이를 제 집게발로 슬쩍슬쩍 밀어 구덩이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리곤 개미귀신은 서둘러 다시 제 구덩이 속으로 쑥 기어들어 갔습니다. 개미는 한숨을 한번 폭 내쉬고서, 먹이를 꼭 물고, 개울 쪽으로 힘차게 발을 내딛었답니다.

'etex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날얘기 - 불꽃이 된 학두루미  (0) 2004.09.12
옛날얘기 - 궤짝 세 개로 왜군을 물리치다  (0) 2004.09.12
옛날얘기 - 소금장수 이야기  (0) 2004.09.12
e-text 데미안 外  (0) 2004.08.22
온라인 도서관 ibrary  (0) 2004.08.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