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남주자/aktuell 2007. 8. 10. 20:59

경향닷컴 입력: 2007년 08월 10일 18:26:51

경기 의왕시 화장품 용기 공장 화재로 숨진 60대 할머니들은 “내 약값은 내가 벌겠다” “자식에게 짐되기 싫다”며 공장에 나갔다. 할머니들은 늘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손자들 크는 것을 보는 걸 낙으로 삼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2~14시간 일했다.

화재로 6명이 사망한 경기도 의왕시 화장품케이스 공장에서 10일 소방관들이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의왕/서성일기자>

◇“어머니, 어머니” 유족들 오열=숨진 할머니 6명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숨진 변귀덕 할머니(60)의 외아들 강대식씨(32)는 “하루 12시간씩 쉬는 날도 없이 꼬박 일하고 한달 60만원을 못받으셨다. 아무리 만류해도 계속 일을 나가시는 게 이해가 안됐는데 제 이름으로 된 적금통장을 보고 이유를 알았다. 아직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데…”라며 통곡했다.
윤순금 할머니(60)의 아들 이경석씨(32·회사원)는 “6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일하시며 누나와 나를 대학까지 보냈다. 평생을 일만 하시다 효도 한번 못받으시고…”라며 땅을 쳤다. 그는 “관절염·신경통에 한달 약값만 40만원이 들었다. 공장 다니시지 마라고 해도 ‘약값이라도 벌겠다’며 일을 나가셨다. 10월에 60번째 생신을 맞아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엄청 좋아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양 메트로병원에 시신이 안치된 김금중 할머니(61)의 큰아들 정희원씨(42)는 “공장에 다니시면서 휘발성 냄새 때문에 항상 두통을 달고 사셨다”면서 “60만원도 채 못버시면서 손자들 보험을 몰래 들어 건네주셨다”고 목놓아 울었다.

숨진 할머니들 것으로 보이는 주인잃은 가방 등 소지품이 화재 현장 곳곳에 버려져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서성일기자>

박형순 할머니(61)의 아들 이덕희씨(40)는 “평소에도 밤 10시 넘어 들어오셨다. ‘회사에 밉보이면 안된다며 잔업을 꼭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제도 잔업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면서 “노인네라고 무시당하고 혹사만 당하다 돌아가셨다”고 분노했다.
엄명자 할머니(62)의 동생 순자씨(57)는 “언니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아 무릎에 주사를 맞으며 일하러 다녔다. 평생 일만 하다 죽은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떡해”라며 오열했다.
유족들은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월급 50만원짜리 일자리도 마다않는 노인들을 이렇게 혹사시킬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예고된 인재=불이 난 의왕 원진산업 공장 내부는 세척용 시너 등 인화성 물질과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용기 등이 가득해 평소 화재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비상구도 없었고 화재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화재후 초동 조치도 미숙해 자체 진화를 시도하다 신고가 늦어져 인명 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나자 공장장 송모씨(35)가 소화기로 자체 진화하려다 실패했고 다른 가열기가 연쇄폭발하자 뒤늦게 119에 신고했다.
의왕소방서 관계자는 “부상자 안봉순 할머니(64)도 공장에 함께 있었지만 구조된 점으로 미뤄 신고만 빨리 됐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유족들은 “불이 났을 당시 공장장이 할머니들한테 ‘불을 빨리 끄라’고 해 시간이 지체돼서 못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철저하게 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전기합선이나 자연발생 정전기로 불티가 튀며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 중이다.
〈의왕|경태영·송진식기자 kye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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