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아이들을 소비하고 있는가/ 오유숙
최근 광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등장이다. 이름까지 제법 알려진 여러 아동 모델들이 활동 중이며,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이 확대된 상태이다. 얼마 전에는 음반까지 제작되는 등, 다소 기형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TV화면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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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상품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가상의 만족’을 하나의 맛보기인양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상품미를 완성한다. 소비의 재생산을 제 1목표로 삼고 있는 광고는, 개체의 특수성을 포획한 후 그들을 보편적 존재, 즉 icon으로 탈바꿈 시킨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지니고 있던 다양한 욕구는 소비와 제품의 틀 안에 재배치되고 뒤이어 감성의 정형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고를 읽음으로써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욕망의 좌표를 확인하게 된다.
최근 광고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등장이다. 이름까지 제법 알려진 여러 아동 모델들이 활동 중이며,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이 확대된 상태이다. 얼마 전에는 음반까지 제작되는 등, 다소 기형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TV화면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이전까지 아이들이 등장하는 광고는 대체로 제품의 소비대상이 아동인 경우이거나, 가족 전체의 모습을 구성하기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등장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제품의 소비와 구매결정권이 모두 성인에게 속하는 제품에도 아동모델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기대해온 기존의 상징이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거나, 아이들에게 새로운 상징이 부과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역모델 시장의 급성장은 그들이 상업적 상징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새집 증후군이나 아토피와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한 질환이 문제시되고 있는 현재, 가장 큰 피해를 보이는 대상은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그에 따라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집과 제품, 식품의 요구가 증대되었고, 그러한 관심은 웰빙, 요가, 명상산업을 확대시켰다. 그 결과 아이가 있지 않은 가정과 미혼의 인구들에게도 환경의 중요성은 크게 부각되어 있는 상태이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 믿을 수 있는 식품에의 추구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아이들의 이미지가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를 위한 중요 선택 기준이었던 아동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한 도구로 재활용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광고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광고는 화면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정형화된 삶의 미적 가치를 부여하려 하며, 어느 누구도 이러한 독재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 아동 모델과 그들을 둘러싼 가상의 환경을 둘러보면 그곳에 펼쳐진 삶의 모습이 비일상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거실 한가운데 위치한 사각의 호수처럼 현실을 이탈한 환경이 집안의 풍경으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모녀지간 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그저 예쁘고 순수해보이기만 한 인물들이 세탁기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최근의 광고는 ‘아름다움’, ‘순수함’, ‘사랑스러움’과 같은 추상화 된 가치를 위해 모든 환경을 재배치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광고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미지는 개체의 자유로움을 박탈당한 채, ‘순수’의 결정체로 포획된다.
과연 광고의 속성에 기인할 뿐이라 말하는 것으로 우리 모두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광고는 우리가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에 있어 그것을 반영하기보다는 이끌어가는 쪽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드높은 중독성을 숨긴 채, 우리가 특정한 태도로 살아갈 것을 권유하고, 그러한 삶에 필요한 요소를 끼워팔기식으로 내놓는 것이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주변을 포착하는 광고의 방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재편하기 시작한다.
광고가 제공하는 아이들의 이미지에는 건강함에서 비롯된 실제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곳의 아이들은 지나치게 순수하다. 하얀색으로 나풀거리는 그들의 의상과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피부, 그리고 맑은 눈동자에 초점이 맞춰진 화면 안에서 그들은 인과관계 없는 웃음을 터뜨릴 뿐이다. 그들은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처럼 순수하게 웃기만 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깨끗한 옷을 더럽히지도 않을 것이며, 지극한 선함으로 어른들의 삶에 조심스럽게 안착할 것이라는 거짓된 믿음을 심어준다. 만약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되도록 아이들을 양육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출산율이 현저히 낮아진 현재, 아이들은 점차 희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희귀성이 개체의 차이를 보장하고, 그것을 강화하도록 도와주지는 않는다. 희귀함은 그 자체가 상품성을 지닌다. 상품성은 개체의 중요성을 뒤덮어 하나의 상품미로 포장하려는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가 하나이기 때문에 개성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비슷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