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념 에코 아나키즘이라는 말은 필자가 1995년 <에코 필로소피>에서 처음 사용한 이래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는 생태 사회를 향한 대안적인 개념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필자가 알기에 그 때까지 한글이든 외국어든 이런 표현은 없었다. 필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전 약 2년간 고전 아나키즘을 공부하면서 이데올로기적 전선이 비교적 단순했던 전통 아나키즘(푸르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등)을 다원적인 갈등과 분화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적인 논쟁의 무대에 세우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후기-현대에 적용 가능한 이론으로 재구성하려는 의도에서 '에코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만들게 되었다. 필자는 이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생각에 영향받았다. 한 사람은 사회 생태론자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이다. 그는 자신의 생태학적 관점을 '사회 생태론(social ecology)'이라 불렀는데, 이에 착안하여 필자는 아나키즘을 환경.생태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이론을 '에코 아나키즘'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에코 아나키즘은 북친의 입장과 아주 유사하다. 또 한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생태주의 운동가 리처드 플럼우드(Richard Plumwood)이다. 그는 80년대 이후 발표한 논문에서 아나키즘 이론에 기초한 자율적 생태사회의 구성을 논하였으며, 필자는 그의 생각을 많이 원용하였다.
목표 : 자연 해방 에코 아나키즘은 그 복합명사가 말해 주듯이 다양한 아나키즘들 중에서 생태(학)운동에 적용되는 현대적 변용이다. 필자는 아나키즘의 '이론'을 생태 '운동'(사실 이 말은 좀 추상적인데, 인간의 환경과 지구 생명계 전체를 배려하는 운동으로 이해하고자 한다)에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론으로서의 아나키즘과 실천으로서의 생태학의 만남이다. 그러면 생명.생태운동이 많은 사회 이론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아나키즘과 결합되어야 하며, 그러한 결합이 정당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어떤 19세기식 사회 이론도 자연을 배려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소위 순수 자연 중심주의적인 이론은 없었으며, 아나키즘도 19세기의 산물이고 보면, 결국 반자연주의 이론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나키즘이 보여주는 '해방에의 열정'이 양자(생태학과 아나키즘)의 결합력을 높여준다. 19세기 아나키즘 이론은 개인, 사회, 국가의 권위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런 목표는 당대의 경쟁적인 이론이었던 맑스주의와 다를 바 없다. 근대 세계에서 해방에의 열정은 개인 해방(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민족 해방(프랑스 대혁명), 계급 해방(맑스주의와 사회주의)으로 이어져 왔다. 이는 한결같이 '사회'라는 틀 안에서 인간 중심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는 저런 사회적 맥락에서의 해방에 더하여 '자연 해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해방되어야 할 환경, 생명.생태계는 사실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는 자연관.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하려면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이론적 지평을 가져야 한다. 사실 심층 생태주의, 에코 페미니즘, 기술 지향적 환경 관리주의, 그 어떤 이론도 독자적으로 '생태계 위기'라는 문제를 감당하지 못한다. 생태계 위기는 '자연 해방'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며, 에코 아나키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사상 체계에 비해 수월성을 가진다. 그 이유는 아나키즘은 그 어떤 이론보다도 '과격한 해방'을 추구했던 유토피아적 정치 철학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이는 매우 중요한 발상의 전환이다―전통 아나키즘이 문제삼았던 '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오늘날 그(국가) 생존 조건의 변화―로 인하여 논쟁점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국가의 기능변화는 '지배와 피지배의 갈등', '권위와 자율의 갈등', '정당한 권위를 보증하는 제도(귀족정치, 민주주의, 전체주의 등등)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 소멸을 재촉하고 있다. 국가 권력을 넘어선 '자유로운 개인의 자율적 연합'이라는 유토피아적 이상사회 건설은 좋든 싫든 세계화를 통하여 문화 코드의 디지털화를 통하여 실현되어 가고 있다.
전망과 과제 정치와 경제가 급속하게 세계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할지 우려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시장 논리에 대항하는 민주적, 도덕적 균형 추를 강화하고, 세계 시장으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영역을 보장함으로써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항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더욱 견고한 연대성을 가지게 될 시민 네트워크는 민주주의의 잠식을 방어하는 좋은 기제이다. 에코 아나키즘은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문화 갈등을 조절하고, 보편화된 지구 정치 시대에도 국민국가와 초국가적인 권력을 조화하며, 나아가 지구인으로서의 삶의 영역과 국민, 시민으로서의 생활 세계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소리없는 실천의 사상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이 만들어진 지 6년이 지났지만 내용없는 마술어(Zauberwort)처럼 허공에 맴돌고 있다. 에코 아나키즘은 생태계 위기가 인간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욕망을 제도화한 사회의 기본 구조가 위계적이기 때문임을 분명히 하는 생태학적 작업, 입헌 민주주의적 대의제, 삼권분립적인 권력 구조, 위계적인 사회 질서로는 자유롭고, 자발적인 자연-재생산-활동이 불가능함을 논증하는 사회 이론화 작업, 나아가 인간.자연.사회, 이 셋 중 어느 쪽을 편들지 않고, 동시에 현재의 문명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을 제시할 수 있는 생태 도덕적 실천 지침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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