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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15 :: [뚜벅이의 동유럽기행 4] 체코에 관한 몇 가지 기억
알아서 남주자/information 2005. 3. 15. 17:18

http://tour.ddanzi.com/2003/m12/m12_1031.html

2003.12.14.일요일
딴지관광청


동유럽 기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분명 체코였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체코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거닐었던 어느 골목 안에 카프카의 생가가 있었을 것이며, 미로를 벗어나 다다른 구시청사 앞 천문 시계는 그 어떤 스토리로 인해 꽤나 유명한 시계였던 듯도 싶다. 이상하게도 거의 이틀 동안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건만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서도 그 때 그 풍경들이 왜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지난 글에서도 슬쩍 언급한 내 여행에의 새로운 시도, 즉 가이드북과 지도로 부터의 자유로움이 프라하에 머물던 나흘의 시간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사는 곳에서 조차 이웃 모르는 곳을 한 번 찾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동반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물설고 낯선 남의 땅에서 그 고단함을 며칠 동안 가져야 한다는 것에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삶의 구속과 관계, 스스로의 억누름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떠나온 여행지에서 가이드북과 지도로 상징되는 그 어떤 욕구에 의해 또 다시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특별히 무언가를 얻을 것도 없고, 얻는다 한들 내 삶에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니라면 길을 따라 걷다가 다리 멈추는 곳에서 쉼표를 찍는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체코에서 나는 그리했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부분으로서의 체코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대신마치 환상적인 파티를 끝내고 났을 때의 그 어떤 아련한 충족감과 여운을 기분좋게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체코를 본 것이 아니라 체코에 취해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하다. 꿈결 같기도 하고 마술 같기도 한 그 어떤 기운에 취해 있었고, 체코의 맥주에 늘 취해 있었으며, 발바닥으로부터 온몸의 감각에 전해져 오는 고풍스런 돌길의 둔탁함에 취했고, 중세 어느 때 쯤 보헤미안 소녀가 랩소디를 부르다 쉬었음직한 그 쉼목에서 휴식과 함께 취했고, 교회에서 울리는 천상의 음악들에 넋을 놓고 취해 있었다.

프라하성에서 나와 실내 정원과 앤티크한 가구들이 잘 어울리는 아담한 레스토랑에 들어갔었다. 백 년은 익히 넘었을 나무 탁자 위에는 세월의 더깨가 우아하게 묻어있었고 나는 젊은 웨이터가 가져온 맥주를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며 빵조각에 시간을 입히듯 버터를 듬뿍 바르는 일을 습관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때, 정원의 한 켠에 앉아 블랙티셔츠가 깊게 패인 채 앞가슴을 드러내놓고 담소하는 한 여인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꿈같은 시간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미 그 순간을 느끼는 바로 같은 시간에 행복감도 상실되는 것은 아닐까? 일테면 너무나 행복해서 감격에 몸을 떠는 그 순간에, 바로 그 찰나에 악마처럼 밀려들어오는 바로 그 생각, '우리의 삶이 이래도 되나?' 혹은 '인생이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라는 잡념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는 꿈같은 시간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있더라도 그 시간은 극히 짧은 감각인지도 모른다. 행복감과 불안감의 교차. 그랬다. 내 체코 여행은 그것이었다. 행복했고 그 행복이 불안해서 서글펐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편안했다. 그러니까.. 이쯤되면 꽤 근사한 여행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 날의 파티를 다 기억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부분 부분적으로 마치 조각난 꿈의 장면들처럼 몇 개의 토막들이 떠오른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영상은 더 선명해졌다. 이제그것들을 글로 남기려 한다.
 

 프라하가 아름다운 이유

체코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특히 프라하에 대해서는 배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거의 똑같은 말들을 한다. ' 밤이면 더 환상적인 도시' ' 카를교의 환상적 분위기'

그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또한 <미션 임파서블>이나 <맥심> <포스코> 광고에 등장하는 그 모습 그대로 프라하는 분명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세상에 상상의 기대를 뛰어넘는 만족물은 그리 많지 않다. 프라하 역시 그 이름 앞에 어김없이 수식되는 '아름다운..' 이라는 말로 인해 오히려 여행자들은 그 곳에서 덤덤함을 느끼기도 한다. 늘 아름다웠던 곳이고, 아름다워야만 하는 곳 앞에서는 감탄사 대신 확인에의 마침표가 찍히는 법이다.


프라하성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 전경

자동차와 전차가 다니지 않고 유일하게 도보만의 보행이 허용된 카를교는 그 덕분에 수 많은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프라하 도시 전체가 1 차 대전과 2 차 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중세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카를교 역시 15 세기 초에 완성된 다리의 형태를 큰 훼손없이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다리 아래로 흐르는 블타바강을 바라보거나, 30 개의 바로크 조각상 하나하나를 감상하거나, 무명 음악가나 화가들의 연주와 작품을 즐긴다. 특히 밤이 되면 이 곳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야경이 근사해서 마치 사진 찍기 대회라도 열린 양 카메라의 플래쉬들이 폭죽처럼 터져나온다.


프라하는 마치 늪과 같은 도시다. 그 곳이 어디가 되었든, 프라하 성이든 혹은 평범한 골목안이든 사람들은 그 곳을 바라 보는 순간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다리를 움직인다. 나도그랬다. 그래서 종종 길을 잃었고, 너무 걸어서 발바닥은 화상에 걸린 듯 화끈거렸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다리를 쉬는 곳, 그 곳에 음악이 있었다. 사람이 다닐 법한 담벼락에 붙어 있는 공연 포스터들은 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프라하 성에서 성비타 대성당과 크리제 교회 등을 돌아다니다가 프라하 시내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을 때도 그 옆에서는 간이 책상 하나를 놓고 공연표를 파는 매표원들이 여러 명 있었다. 나는 <Labkovic palace>에서의 공연을 선택했고 390 kc (1 kc = 약 34 원)를 지불했다. 약 100 석 규모의 작은 홀 안에는 정면에 피아노 한 대가 있고 천장은 중세의 프레스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소박함과 아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 3 중주의 공연은 비발디의 G 단조로 시작하여 바흐를 거쳐 드보르작과 모차르트로 이어졌는데 연주 중간 중간 피아노가 실수를 하고 부모와 함께 온 일본 갓난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케쥬얼한 분위기가 주는 색다른 느낌이 꽤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신비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프라하 성 한 공간에서 동시대의 작은 인원이 옹기 종기 모여 음악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어둠이 내린 카를교, 그 바로 옆 성당에서 들었던 교향곡 연주 역시 감동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중세의 고딕 교회가 주는 위압감은 파이프 오르간과 성악이 어우러졌을 때 숨이 막힐 정도의 엄숙함으로 전달해왔다. 그 엄숙함 속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들려올 때는 실로 천상의 소리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프라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인형극 공연이다. 특히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 인형극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기를 모으고 있는 프라하의 대표 공연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오페라는 인형극 답게 약간은 조악하게 펼쳐지지만 지오반니의 연애열정, 레포렐로의 우스꽝스러운 익살, 묘지에 나타난 유령 등 원극 인물의 캐릭터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며, 음향 시설도 대가극의 음악을 제대로 전달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일본 만화 <몬스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형극이 주는 분위기를 통하여 그 만화에서 그려진 프라하의 느낌을 약간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눈(아름다운 도시)과 발(중세의 돌길)과 귀(크고 작은 공연들)와 혀(필즈너 우르?로 대표대는 맥주)등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은 프라하에서 녹아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라하는 아름다운 것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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