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제 자기 길을 가라”
짐 데이토 세계미래학회 회장
“모방에서 미래는 나오지 않아”
“저의 진정한 충고는 한국은 이제 한국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라는 겁니다. 어느 나라를 모델로 삼거나 모방하여 따라가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래는 모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미래학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하와이 대학의 짐 데이토(Jim Dator) 교수는 본지와의 단독 회견에서 이 같이 충고하면서 “한국은 IT분야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놀라우리 만치 많은 업적을 이룩한 만큼 이제는 자기 길을 걸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사단법인 유엔미래포럼(대표: 박영숙)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데이토 교수는 지난 1967년 앨빈 토플러 박사와 함께 미래학(future study)이라는 학문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한 선구자로 미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앨빈 토플러 박사는 미래학을 기업의 미래에 접목시키는 기업컨설팅으로 나가 돈을 벌었고 데이터 교수는 학교에 남아 연구를 계속했다.
현재 세계미래학회 회장이며 하와이 대학 미래전략센터 소장인 데이터 교수는 1989년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였던 황장엽 씨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대학에서 미래학을 강의한 적이 있다. 또한 일본통이기도 하다.
데이토 교수는 “과거에 일본 지배를 받은 한국은 일본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미국을 많이 닮으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래서 특히 한국의 경우 미국 경제가 퇴락하면 같이 퇴락할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그래서 한국은 모델을 어디서 찾으려 하지 말고 혼자서 개척해 나가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훨씬 좋은 일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많은 것을 이룩했다. 일본을 잘 관찰하면 한국에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일본을 교훈 삼을 필요 있어”
지난 10년 동안의 불황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상당부분 그렇다”고 데이토 교수는 대답했다. 놀랄 만큼의 경제를 이룩한 경제대국 일본의 경기침체는 일본이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요즘 ‘잃어버린 10년’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사실 데이토 교수는 일본어에 능통하며 일본문화에 익숙하다. 최근 6년간 일본에 머무른 바 있다.
황장엽 씨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된 이유에 대해 데이토 교수는 “북한이 특별한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980-90년 당시는 소련의 사회주의가 붕괴되는 시기였고 더불어 엄청난 세계변화가 태동되는 시기였다. 그때 대부분의 사회주의 동유럽국가를 방문해 미래학을 강의했다. 북한도 나를 초청해서 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데이토 교수는 “소련 사회주의 몰락 후 동유럽 국가들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착실히 이행해 대부분 성공의 길을 걷고 있으나 북한은 실패한 경우”라며 “미래학을 통치자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쓴다면 그것은 미래학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데이토 교수는 서울에서 3월 6일 황장엽 씨를 직접 만났다고 말했다.
데이토 교수는 지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에너지와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는 고갈되고 있고 환경은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에너지 생산량과 소비량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이오시스템(biosystem)을 비롯해 대체 에너지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학은 예측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
한편 매일경제 교육센터가 주최한 초청강연에서 데이터 교수는 미래학은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미래학은 발명하는(invent) 것이지 예측하는(predict) 것이 아니라는 것. 아이디어가 곧 이미지다. 우리는 미래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를 배우고 이미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미래학이다.
데이토 교수는 또 재미있는 주장을 폈다. 미래(future)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것. 다시 말해서 아이디어와 이미지도 각기 다르기 때문. 그래서 데이토 교수는 미래학이라는 말을 영어로 ‘future study’가 아니라 복수인 ‘futures study’를 고집한다. 단수인 ‘future study’는 처음부터 틀렸다는 이야기다.
데이토 교수에 따르면 1972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세계미래학회를 만들기 위한 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에서 정관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루마니아 공산당 출신 한 간부가 ‘futures’를 보고 분노해 단상으로 올라가 설치는 바람에 s를 뺐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사회주의가 멸망하자 다시 슬며시 s를 넣었다고 한다. 아마 그 간부는 공산주의(communism)가 오직 하나인(단수) 미래(future)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데이토 교수는 해석했다.
데이토 교수는 훌륭한 미래학자에 대해 언급하면서 “만약 강의를 듣고 감동하고 박수를 치고 싶은 학자가 있다면 그는 좋은 미래학자가 결코 아니다”라고 말해 청중을 웃기기도 했다. 만약 내용에 감동한다면 그 내용은 현재의 이야기일 뿐이지 결코 미래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 즉 이미 늦은 이야기라는 거다.
“미래전략기구 설립 시급해”
데이터 교수는 “그래서 강의를 듣고 무슨 말인지도 전혀 모르는, 그래서 수강료를 되돌려 달라고 하고 싶은 학자. 그리고 엉뚱하고 엉터리(ridiculous) 같은 학자. 그 학자야말로 훌륭한 미래학자”라고 주장했다. 미래학에서 유용한 아이디어는 항상 엉터리로 취급 받은 적이 많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한편 이날 통역을 담당한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는 “전 세계 30개국이 2020년의 미래를 바라보는 ‘2020국가보고서’를 내고 있는데 10대 무역대국인 한국만이 없다”며 “한국의 미래전략기구설립은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래에는 국제화가 더 급속히 진행되고 국가역할은 줄어들면서 지역간 통합이 가속화 될 것이다. 박대표의 충고며 미래에 대한 진단이다. 그래서 하루빨리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이야기다.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14000/0000013580.j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