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미녀

"무자비한 미녀"(La Belle Dame Sans Merci) / 키츠
오 무슨 번민이 있는가요, 그대 갑옷 입은 기사여,
홀로 창백한 모습으로 헤매이는데?
사초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데.
오 무슨 번민이 있는가요, 그대 갑옷 입은 기사여,
그토록 여위고, 그토록 슬픔에 잠겼는데?
다람쥐의 창고는 가득차고
추수는 끝났는데.
나는 보네 고뇌와 열병의 이슬로 젖은
그대 이마 위의 한 송이 백합꽃을.
그리고 그대의 뺨에서 시드는 장미는
역시 빨리 시드는 것도.
나는 초원에서 한 숙녀를 만났소,
온전히 아름다운 요정의 딸을.
그녀의 머리칼은 길고, 그녀의 발은 가볍고
그녀의 눈은 정열적이었소.
나는 그녀의 머리에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소,
그리고 팔찌와 향기로운 허리띠도,
그녀는 마치 사랑하듯 나를 바라보며
달콤한 신음소리를 내었소.
나는 그녀를 천천히 걷는 내 말에 태웠고
온종일 다른 것은 보질 못했소,
비스듬히 그녀는 몸을 기울여
요정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오.
그녀는 나에게 달콤한 맛나는 풀뿌리와
야생꿀과 감로를 찾아주며
정녕 묘한 언어로 말했소 -
저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그녀는 나를 요정 동굴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울며 무척 비탄에 잠겨 한숨 지었소.
거기서 나는 그녀의 이글이글 불타는 눈을 감겨 줬소,
네 번의 입맞춤으로.
거기서 그녀는 나를 어르듯 잠재웠고,
거기서 나는 꿈꾸었소 - 아! 슬프게도!
나는 이 싸늘한 산허리에서
마지막 꿈을 꾸었소.
나는 보았소 창백한 왕들과 왕자들을,
창백한 용사들도, 그들은 모두 죽음처럼 창백했소.
그들은 부르짖었소 - "무정한 아름다운 여자가
그대를 사로잡았구나!"
나는 보았소 어스름 속에서 소름끼치는 경고를 하는
그들의 굶주린 입술이 크게 벌어진 것을,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 내가 여기
이 싸늘한 산허리에 있음을 알았소.
이것이 내가 홀로 창백한 모습으로
헤매이며 여기 머무는 까닭이라오.
비록 사초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새들도 노래는 하지 않지만.
http://ww1.introcom.net/~skywalk520/engpoem/keats02.htmlJohn
La Belle Dame Sans Merci / Keats (1795-1821) / Ballad
I.
O WHAT can ail thee, knight-at-arms, Alone and palely loitering?
The sedge has wither’d from the lake,
And no birds sing.
II.
O what can ail thee, knight-at-arms!
So haggard and so woe-begone?
The squirrel’s granary is full,
And the harvest’s done.
III.
I see a lily on thy brow
With anguish moist and fever dew,
And on thy cheeks a fading rose
Fast withereth too.
IV.
I met a lady in the meads,
Full beautiful—a faery’s child,
Her hair was long, her foot was light,
And her eyes were wild.
V.
I made a garland for her head,
And bracelets too, and fragrant zone;
She look’d at me as she did love,
And made sweet moan.
VI.
I set her on my pacing steed,
And nothing else saw all day long,
For sidelong would she bend, and sing
A faery’s song.
VII.
She found me roots of relish sweet,
And honey wild, and manna dew,
And sure in language strange she said—
“I love thee true.”
VIII.
She took me to her elfin grot,
And there she wept, and sigh’d fill sore,
And there I shut her wild wild eyes
With kisses four.
IX.
And there she lulled me asleep,
And there I dream’d—Ah! woe betide!
The latest dream I ever dream’d
On the cold hill’s side.
X.
I saw pale kings and princes too,
Pale warriors, death-pale were they all;
They cried—“La Belle Dame sans Merci
Hath thee in thrall!”
XI.
I saw their starved lips in the gloam,
With horrid warning gaped wide,
And I awoke and found me here,
On the cold hill’s side.
XII.
And this is why I sojourn here,
Alone and palely loitering,
Though the sedge is wither’d from the lake,
And no birds sing.
http://www.bartleby.com/126/55.html
그림: 카우퍼/ 워터하우스
존 키츠의「무자비한 미녀」: 외양과 실재
윤 명 옥
Ⅰ. 들어가는 말
다른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글쓴이의 의도적인 고도의 전략과 기교를 통해 압축과 긴장미, 그리고 의미의 다양성을 창출하는 현대시는 늘 외연과 실재라는 측면에서 존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시는 단어들의 일차적 의미인 외연적인 의미 혹은 외양적인 의미와 함께 그 이차적이거나 함축적인 내포적 의미 혹은 실재적 의미를 작용시키는 문맥을 형성하는 전형적인 글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표면 그대로 현대시를 보는 것은 무의미하고 건조한 작업이 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여러 면에서 외양과 실재의 이중성이 교묘하게 짜여져 있어 음미하면 할수록 음영이 어우러진 한 폭의 입체적 풍경화의 윤곽을 드러내는 작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츠(John Keats)의 「무자비한 미녀」("La Belle Dame sans Merci")는 앞에서 언급한 그러한 요소를 갖춘 작품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키츠가 살았던 영국 낭만기는 고도의 지력과 시인의 의도적인 다양한 시적 기교를 주조로 하는 시풍이 유행하던 시기도 아니고,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소박한 삶과 자연, 그리고 주관적인 감정을 노래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요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 중 비교적 현대적이라고 부를만한 시적 기교와 시적 모티브를 통해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꾸준히 실험했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주관성이 중시되던 시기에, 그는 주관성 못지않게 객관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현대 시인 엘리엇이 주창한 "객관적 상관물"의 원조가 될 법한, 사물을 빌어 감정을 전달하는 기교를 일찍이 도모하였던 시인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키츠는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경이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썼던 시기에 나온 그의 시들 중에서도 후세에 가장 큰 영향력과 명성을 남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무자비한 미녀」는 바로 그의 이런 시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의도적인 수수께끼 전략과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통한 외양과 실재, 모순과 역설, 그리고 그로 인한 의미의 중층성 혹은 다층성 창출 등을 아주 재미있고, 재치 있게, 그리고 독자와 숨바꼭질하듯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것들은 현대 시인들에게 여전히 각광받고 심혈을 기울이게 하는 시적 기교들이란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가능하면 시인 자신의 주관을 배제한 채, 사물과 사건을 객관적이고 비개성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의도적인 전략적 기교들이라는 점에서 이미 현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바로 이러한 외양과 실재의 간극을 창출하는 키츠의 시적 기교를 살펴봄으로써, 지금까지 키츠를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의 일반적인 특징에 동조하여 단지 낭만주의적인 성향이 농후한 주관적인 시만을 썼던 시인으로 분류해왔던 견해에서 벗어나, 그가 당대의 여타 시인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현대적인 기교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또 그런 점에서 후대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새로운 평가를 내림으로써 그를 다른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과 차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Ⅱ. 수수께끼 전략
다른 장르보다도 언어를 매개로 유희를 일삼는 시는 일종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놀이는 인간이 지구상에 살아온 이래로 인간 삶에 있어서 재충전의 요소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문화적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시는 진지함 너머에 즉 어린이, 동물, 미개인, 예언자가 속하는 보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수준, 예컨대 꿈, 매혹, 엑스터스, 웃음의 영역에 존재한다"(호이징하 183)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오락으로서 인간의 심미적 정서를 자극하는 시는 동음이의어의 재담이라든가, 갖가지 비유라든가, 모호성이라든가, 다의성이라든가 하는 시적 기교를 동시에 갖출 때 수수께끼의 특성을 지니는데, 아도르노는 모든 예술은 수수께끼라면서 미학 이론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예술 작품과 예술 전체가 수수께끼이다. 이 점이 예로부터 예술 이론을 자극해 왔다. 예술 작품이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감추는 것, 바로 이 점이 언어적인 측면에서 본 수수께끼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광대처럼 사람을 조롱한다. 즉 사람들이 예술작품 속에서 작품과 더불어 작품을 완성해 나아가면 수수께끼적 성격은 눈에 띄지 않게 된다. 반면에 작품에서 벗어나 작품의 내재적 연관 관계와의 계약을 깨뜨리게 되면 그것은 다시 유령처럼 나타난다. (194)
이 경우 수수께끼라는 말은 결코 어디에나 쓰이는 상투어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수수께끼라는 말은 비상투어적 의미와 상투어적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서, 작가가 전략적으로 의도한, 눈에 띄지 않게 눈에 띄는 수수께끼를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퍼즐 그림 같은 것이다. 작가가 구사한 시적 기교와 더불어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는 일종의 장난으로서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켜 탐색과 서스펜스의 세계로 인도한다. 탐색과 서스펜스는 탐정소설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고도의 언어의 압축장인 시에서 교묘하게 구사될 때 그것은 독자의 흥미진진한 탐독을 유도할 의도로 제안된 작가의 전략이 된다.
키츠의 「무자비한 미녀」는 바로 이러한 의도에 준거한 시로 볼 수 있는데, 시 자체에서 여러 가지 수수께끼적 특징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시는 수수께끼의 기본인 묻고 답하는 놀이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가 기사에게 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기사는 이에 답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개가 제 꼬리를 물고, 꼬리가 제 입에 물리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는 순환적 고리 같은 구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키츠는 이 과정을 아주 주도면밀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이 시의 내용은 처음 세 연에서 무명의 화자가 기사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머지 연에서 이에 대한 기사의 대답이 행해짐으로써 형성되고 있다. 기사의 대답으로 이루어지는 넷째 연에서 마지막 열두째 연까지에서는 기사의 진로가 상승했다가 하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키츠가 이른바 "쾌락의 체온계"(Letters 59-60)라고 부르는 일련의 점증하는 강렬성의 문제와 연관된다. 즉, 시의 중심 이야기가 시작되는 넷째 연에서 일곱째 연까지에서는 기사의 진로가 점진적으로 상승 발전하며, 중심이 되는 여덟째 연에서 기사의 진로는 상승의 정점에 이른다. 이어서 아홉째 연에서 마지막 연까지 기사가 요정 동굴에서 하강하기 시작해서 결국엔 요정과 완전히 분리되어진다. 기사와 요정의 분리는 시의 장면을 처음의 시발점으로 회귀시켜 순환적 운동을 완결시킨다. 따라서 점증하는 강렬성에 의한 이 정교한 구조는 후에 논의될 내용상의 외양과 실재라는 이중의 의미와 형식이 분리될 수 없도록 밀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의 서두는 다음과 같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어조로 시작된다.
오 무엇이 그댈 괴롭히길래, 갑옷 입은 기사여,
홀로 창백하게 헤매는가?
호수에는 골풀도 시들고,
노래하는 새도 없는데.
O what can ail thee, knight at arms,
Alone and palely loitering?
The sedge has wither'd from the lake,
And no birds sing. (1-4)
기사는 여기서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또한 기사의 수척한 외양과 호숫가의 골풀은 시들고 새의 노래 소리도 없는 자연의 황량함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성이 암시되어 있다. 초췌하고 황량한 상황에 있는 기사의 모습은 이제 꽃의 이미지를 통하여 거의 죽을 지경으로 묘사됨으로써 더욱 황폐해진다. 기사의 표정은 고뇌와 열병의 이슬에 젖은 백합과 시든 장미에 비유되어 나타나는데, 기사는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지닌 상태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어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꽃의 조락은 기사의 죽음에 가까운 상황을 나타내준다. 기사가 이렇게 된 원인은 이제 기사의 경험담을 통해 나타나는데, 그의 슬픔의 근원은 참담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아주 달콤하고 행복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초원에서 매우 아름다운 요정을 만난 이야기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건장하고 씩씩해야 할 기사가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외롭고 창백하게 헤매고 있으며, 수척하고 슬픔에 잠긴 모습으로 제시되는 것은 독자로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는 궁금증을 일으키게 마련인 수수께끼적 상황 자체가 수수께끼적인 매력이 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또한 왜 기사는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암호 풀이 식의 해독을 요구한다. 시가 진전됨에 따라 그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가 이야기하는 요정 아가씨와의 일은 과연 실제적으로 무엇인가? 그 아가씨는 진정 어떤 존재인가? 등의 흥미와 호기심을 독자에게 유발시킨다. 이런 면에서 이 시는 시의 모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사와 요정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데, 외면상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물이나 행위의 의미가 숨겨져 있어(실상은 감춘 듯이 드러내져 있어), 독자로 하여금 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을 찾아내 각기 다른 모자이크 조각들로 전체 무늬를 맞추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이 시가 외양과 실재를 지닌 중의성이나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 다의성의 여지를 만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시는 또한 비유적 묘사와 모순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수수께끼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수께끼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수수께끼의 본질은 말의 불가능한 결합에 의해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을 것이다. 사물의 일반적 결합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나, 은유의 결합에 의해서 그것은 가능하게 된다. (Aristotle 59)
이는 시의 수수께끼적 속성을 역설과 모순으로 자연스레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 역시 특별히 심오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역설과 모순어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요정은 두 개의 상반된 요소를 지닌 역설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요정 아이"(fairy's chile)로 등장하는 이 불가사의한 아가씨는 대조의 요소를 함께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켈트적인 민요에서처럼 그녀는 "신비스런 역설"(Sperry 236)의 진수인 것이다. 이 요정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를 보면, 콜빈(Colvin)은 이 요정을 "초자연적이고 악마적인 인물"로 보고(350), 패터슨(Patterson)도 콜빈과 유사하게 "초월적이고 악마적인 존재"로 본다(20). 이 존재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과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는 존재로서 신의 위치에 더 가깝지만, 창조적이고 파괴적인 속성을 지녔다. 이것은 곧 아름답지만 마력을 지닌 코울리지(Coleridge)의 악마적 연인(demon lover)과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요정은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동시에 악마적이고, 착하기도 하지만 악하기도 하고, 창조적인 속성을 지닌 동시에 파괴적인 속성을 지님으로써 양면성을 소유한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모순과 연관하여 전혀 상반된 상황을 지닌 이율배반성은 "요정 동굴"(elfin grot) 자체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형태상 지상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성격이 신비와 초월의 영역에 속해 있는 곳이다. 물질세계의 차가운 산허리에 초월세계의 신비가 깃들어 있으므로 생명 자체가 그 고유의 핵으로 양육되어 강렬성의 계단을 통하여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 서로 모순된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이른바 모순적인 영역이다. 그곳은 세속의 세계면서 동시에 영혼의 신성한 교감에 의해 차원이 전이된 초월의 영역이다(Wasserman 70). 요정 아가씨가 기사를 이끌고 간 요정 동굴은 시간성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무시간성과 불멸이라는 차원에서 그것은 그리스 항아리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그리스 항아리가 그 자체에 개인적인 인간 삶을 그리면서 영원한 미와 사랑을 지닌 그림과 공동체의 인간 삶을 그리면서 인간적이지 못하고 황량한 그림이라는 상반된 두 개의 장면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요정 동굴은 인간에게는 "차가운 산허리"(cold hillside)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요정 동굴은 코울리지의 「쿠블라 칸」("Kubla Khan")의 "낭만적인 동혈", 키츠의 그리스 항아리나 나이팅게일의 세계와 같은 곳이다. 그곳은 인간이 천상적인 영적 존재로 승화될 수 있는 곳으로, 순간적인 지상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에게 인간 본연의 필멸성을 확인시켜줌으로서 그를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율배반적인 언어 표현은 요정 아가씨가 내는 "달콤한 신음소리"(sweet moan)에도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달콤함"과 "신음소리"라는 서로 상반되는 상황이 병치되어 있는 것은 요정 자체가 상반성의 집약체이며 이 시가 전반적으로 상반 요소의 병치로 되어 있다는 점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적 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설적 의도는 이 시의 제목인 "아름다운 자비심 없는 아가씨"(La Belle Dame sans Merci)라는 말이 "아가씨"를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과 "자비심 없는"이란 말이 양쪽에 병치되어 있는 데서 드러날 뿐 아니라, 이 시의 이야기에 기사와 요정이라는 남성과 여성, 양 인물의 등장에서도 나타난다. 상반 요소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서두와 말미에서 반복적으로, 기사가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오 무엇이 그댈 괴롭히길래, 갑옷 입은 기사여,
홀로 창백하게 헤매는가?
O what can ail thee, knight at arms,
Alone and palely loitering? (1-2)
오, 무엇이 그댈 괴롭히길래, 갑옷 입은 기사여,
그렇게 초췌한 채 비통에 잠겨 있는가?
O what can ail thee, knight at arms,
So haggard and so woe-begone? (5-6)
이게 내가 여기서 서성이고 있는 까닭이지요.
홀로 창백하게 헤매면서,
And this is why I sojourn here,
Alone and palely loitering, (45-46)
여기서 기사는 창백하게 홀로 목적 없이 배회하고 있으며 수척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기사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세속의 악과 싸우는 힘찬 존재인데도 이처럼 나약하게 묘사된 것은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이것은 기사가 꿈속에서 보게 되는 왕과 군주들과 무사들에게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의식주의 걱정 없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인데도, 이들은 굶주린 입술을 지닌 채 죽음처럼 창백한 모습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표현은 호숫가의 "골풀"(sedge)이 "시들었다"(wither'd)는 자연환경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호수는 물이 있는 곳이고, 전통적으로 물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해왔다. 그런데 생명의 근원인 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골풀 마저 시들어 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또한 대조의 형태는 인간과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슬픔과 고통 속에 비참한 상태로 있는 기사와 풍요로움 속에 있는 다람쥐가 대비되어 있다.
대조적인 언어의 병치는 "야생의 꿀"(honey wild), "만나 이슬"(manna dew) 같은 음식의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야생"과 "꿀", "이슬"과 "만나"는 서로 대치되는 상황으로, "꿀"과 "만나"가 천상적인 요소인데 반하여 "야생"과 "이슬"은 지상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이 병합되어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here)와 "거기"(there)에서도 대조의 상황은 볼 수 있다. "여기"는 기사가 헤매고 있는 들판으로 인간이 있는 지상이며, "거기"는 꿈속으로 요정이 있는 천상이다. 또한 "여기"가 "차가운 산허리"인 동시에 육신이라면 "거기"는 "요정 동굴"인 동시에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양분된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성거리는 것"(sojourn)과 "헤매는 것"(loiter)에서도 언어의 대비를 볼 수 있다. "서성거리는 것"은 아직 어떤 것인가 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문명생활의 여가를 불러일으키는 말로 긍정적인 어조의 말이고, "헤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을 나타내는 말로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어조의 말이기 때문이다(Levinson 69). 따라서 이 두 단어가 공존하고 있는 것은 "아름답고도 아름답지 않은 어조의 반복"(Levinson 77)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상반 요소의 통합 형태를 의미한다.
이 시에서 대조적인 면은 화자와 기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모습은 드러내지 않지만, 기사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에게서 답변을 이끌어내는 화자는 초월적인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는 이 세상은 두 가지 상반되는 측면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가 가을의 세계를 상반되는 상황이 함께 있는 계절로 보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또한 그가 기사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집착에서 벗어나 자아 각성에 이르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도 이를 인지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기사는 왕과 군주들, 무사들처럼 요정과 결합하겠다는 꿈에 집착해 있는 인물로,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요정 아가씨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가장 극적인 형태 속에 감동적이고 충만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데(Sperry 231), 이는 수수께끼 전략에 의한 묻고 답하기와 역설과 모순 그리고 대조의 기교를 통한 외양과 실재의 구축이라는 현대 문학적 유희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Ⅲ.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어느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시는 피상적으로 표면만을 볼 것이 아니라 행간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리를 나타내는 알레테이아(aletheia)라는 그리스어가 어떤 존재의 감추어진 것을 드러낸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이데거(Heidegger)가 지적했듯이(Makaryk 356), 이 시에서 진리를 의미하는 사실, 즉 실재는 외양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에서 외양과 실재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은 기사와 요정의 관계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를 매우 잘 이해하며 낭만적인 사랑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마치 존 그레이가 파악한 것처럼 같은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그 속성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그 근본 성향이 다른 존재들이다.
이것은 기사가 남성이고, 요정 아가씨는 여성이라는 상반성 이외에, 그들이 각기 남성과 여성의 통념적인 특징을 가졌다는 데서 나타난다. 남성을 대표하는 기사는 남성적이고, 중심 지향적이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데 반해, 여성을 대표하는 요정은 여성적이고, 주변 지향적이고, 감성적이고, 이상적이다. 또한 기사는 기사라는 그의 직업을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위계질서에 따라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함으로써 왕에게 충성하는 존재로 수직적인 사고를 지녔고, 그 때문에 단순하고, 목적론적이고, 지배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요정 아가씨는 수평적인 사고를 지녔고, 목적보다는 방식을 더 중시하며, 낭만적인 성향이 더 강하다. 이러한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성향은 고양이를 통해 실시한 성별 성향 시험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암고양이와 숫고양이가 성교시 그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그들 가까이에 생선접시를 놓으면, 숫고양이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온 목표를 두고 집중하는데 반하여 암고양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동시에 생선에도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남성이 목적론적이고 수직적인 성향을 가진 것에 비해 여성은 무목적론적이고 수평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도 성교를 상징하는 말타기의 행위와 함께 기사는 오로지 요정만을 바라보느라고 하루 종일 요정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데 비하여 요정은 비스듬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남성의 성감대가 단선적인 데 비하여 여성의 성감대는 다선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성이 수직적인 사고를 하는 반면 여성은 수평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을 암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기사는 지배적이고, 인위적인데 반하여 요정 아가씨는 피지배적이고, 자연적인 성향을 지녔는데, 이는 그들이 서로에게 주는 물건에서 엿볼 수 있다. 기사가 요정 아가씨에게 주는 것은 "팔찌", "화관", "허리띠"인데, 이들은 상대를 구속하고 지배하기 위한 도구들이고(Bennett 81), 이들이 기사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공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정 아가씨가 기사에게 주는 "달콤한 뿌리", "야생 꿀", "만나 이슬"은 자유롭고,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적인 것들이다(이정호 69). 그러므로 요정과 기사는 다른 존재이다.
외양과 실재의 문제는 기사와 요정의 서로에 대한 "어긋난 이해"(오해)에서 더욱 확연히 찾아볼 수 있다. 기사는 요정을 단지 예뻤다고 묘사한다. 그는 요정의 마력에 자꾸만 이끌리게 되고, 그리하여 그는 요정에게 화관, 팔찌, 향기로운 허리띠를 만들어주고, 그녀를 말 태워주며, 하루 종일 오로지 그녀 이외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된다. 이에 요정은 기사를 사랑하는 듯이 바라보며, 달콤한 신음 소리를 내며, 비스듬한 자세로 요정의 노래를 기사에게 불러준다. 또한 그녀는 기사에게 달콤한 뿌리, 야생 꿀, 만나 이슬을 찾아주고, 낯선 언어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녀에게 화관과
꽃팔찌와 향기로운 허리띠를 만들어줬지요.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듯이 바라보더니,
달콤한 신음 소리를 냈어요.
I made a garland for her head,
And bracelets too, and fragrant zone:
She looked at me as she did love
And made sweet moan. (17-20)
나는 그녀를 천천히 걷는 내 말에 태워주고,
하루 종일 그녀 이외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요.
왜냐면 그녀는 옆으로 비스듬히 구부리고,
요정의 노래를 불러줬으니까요.
I set her on my pacing steed,
And nothing else saw all day long,
For sidelong would she bend, and sing
A fairy's song. (21-24)
그녀는 내게 아주 달콤한 뿌리와
야생 꿀과 만나 이슬을 찾아줬어요.
그리고 확실히 이상한 언어로 말했어요.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해요, 라고.
She found me roots of relish sweet,
And honey wild, and manna dew,
And sure in language strange she said--
I love thee true. (25-28)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요정에 대한 묘사가 기사의 주관이 개입된 견해라는 사실이다. 기사는 요정에게 마음이 이끌린 상태로 그녀의 객관적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녀의 아름다움만을 모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은 기사가 요정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기사는 일방적으로 자신이 요정과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요정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순전히 기사의 주관적인 추측에 의한 것이다. 이는 그녀에 의해 그의 객관적인 사고능력이 흐려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기사가 속해 있는 지상의 호수가 말랐다고 하는 것에서도 암시적으로 나타난다. 흔히 호수는 지상의 눈을 상징하는데, 여기서 말랐다는 것은 지상에 속한 존재인 기사의 눈이 흐려진 것을 의미하고, 그가 흐려진 눈으로 사물을 잘못 보고 있음을 상징한다.
또한 여기서 기사를 향한 요정의 행위는 "그렇다"(it is)가 아니라, "하는 것처럼"(as) "보이는 것"(look) 뿐이다. "그렇다"(it is)가 진리이고 실재라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as, seem, look)은 가식과 외양의 표현이므로 이것은 기사가 요정의 태도를 잘못 받아들여 "자기기만"(Bloom 387) 당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퍼킨스(Perkins)는, 보이는 것과 사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며 요정이 단지 "어떤 것처럼 보인다"는 묘사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이 낯선 존재에 대해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말한다(Hill (ed.) 185).
이러한 모호성은 그녀의 자세가 비스듬하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정면으로 앉은 것도 아니고, 선 것도 아닌, 이 똑바르지 않은 자세는 이 여자의 존재가 무엇이라 확정지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녀가 기사에게 "이상한 언어"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애매모호하다. "이상한"(strange)은 "비스듬한"(sidelong)이란 표현과 같은 맥락을 지니며, 기사가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다른 존재들처럼 서로를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있을 뿐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외양과 실재의 차이는 이 시에서 시인의 의도적인 전략으로서 시인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객관적이고 비개성적인 시적 장치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교는 앞에서 살펴본 수수께끼 전략과 함께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어서도 이중적이거나 다중적인 해석을 낳게 한다.
Ⅳ. 의미의 중층성 혹은 다층성
수수께끼 전략이라는 기저 아래 창출된 외양과 실재라는 이중적인 문제는 그 구조만큼이나 이 시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단일한 의미만이 아니라 중층적이거나 다층적인 의미의 해석을 창출한다. 이 시는 외양적으로 드러난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단순한 로맨스를 벗어나 실제적으로는 여러 가지 상징이나 알레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사와 요정 이야기는 중세 민요에서 전승된 민중의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Wasserman 68), 인간이 천국도 지옥도 세속의 세계도 아닌 어느 신비한 미지의 세계로 사랑의 마력에 의해 이끌려 갔다가 돌아온다는 이 전설은 아마도 키츠의 상상력을 자극하였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러한 자극에 힘입어 그는 이 시에서 완숙한 언어 표현의 예술형식으로 이 신비의 세계에 대한 성찰을 구현해 낼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깊고도 분명한 정서와 사고의 표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 시는 단순한 언어와 발라드 형태, 그리고 꿈같은 경험의 이야기란 점에서 외면상으로는 코울리지의 발라드인 「노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시의 느낌은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소위 키츠의 "경이의 해" 동안에 쓰인 시 중 후세에 가장 큰 영향력과 명성을 남기며 간결의 극치를 보여준다(Evert 244)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 시는 그 주제의 접근에 있어 다른 어떤 시보다도 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전기적이고 심리적인 접근 이외에 순수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평자들이 각기 다르게 접근한다. 먼저, 워써먼(Wasserman)은 이 시에 나오는 기사가 점점 더 초월의 경지에 올라가는데, 그가 완전한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여 완전한 행복을 누리려는 순간 그가 신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만다고 보고(75), 다반조(D'Avanzo)는, 이 시를 상상력의 상승과 완성, 현실 세계로의 하강의 반원형(198-9)이라고 생각하고, 스페리(Sperry)는 이 시는 시의 정수를 의미한다고 본다(240). 이러한 견해들은 모두 상상력과 연관되며, 키츠가 이 시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통한 영적 세계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한 인간 슬픔의 인식이라는 상반 요소의 통합된 경험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지닌다.
우선 이 시가 상상력의 알레고리라는 관점과 요정의 모습을 연관시켜 살펴보면 그녀에게서 "야성적인 눈"과 "긴 머리칼"이라는 두 가지 독특한 육체적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야성적인" 눈은 그녀의 성격의 어떤 길들여지지 않은 면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D'Avanzo 202). 또한 이 시에서 시인과 동일시되고 있는 기사를 매혹시키는 그녀의 긴 머리칼은 성적인 매력을 나타내주기도 하지만, 상상력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키츠의 시에서 머리카락은 반복적으로 시인의 상상적 영감과 환상에 연관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D'Avanzo 201). 이 점은 『잠과 시』(Sleep and Poetry)에서 "미의 머리칼", "그들의 날씬한 머리칼을 굽실굽실한 머리결 속으로 휘날리며", "그들의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달래며", "화려하게 굽실거리는 머리칼들"로 여러 번 머리카락이 시 쓰기와 연관되는 상상력의 상징으로 언급되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엔디미온』(Endymion)에서 씬시아의 풍부한 "금빛 머리칼"은 엔디미온에게 시적 열광을 고무시켜 주고,『히페리온』(Hyperion)에서도 아폴로를 묘사하는데 "금빛 머리칼이 그의 열렬한 목 주위에 물결치고 있었다"는 표현을 볼 수 있다. 눈과 머리카락 이외에도 요정의 발걸음은 천상의 우아함과 순진성과 젊음을 상징한다. 기사가 요정을 묘사한 것을 보면 우리는 요정에게서 아무런 불길한 예감을 느낄 수가 없다(Bate 480). 어느 의미에서건 그녀는 『엔디미온』에 나오는 키르케 같은 인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초원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지요.
요정의 아이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운,
머리는 길고, 발걸음은 사뿐하고,
그리고 눈빛이 순수한.
I met a lady in the meads,
Full beautiful, a fairy's child;
Her hair was long, her foot was light,
And her eyes were wild. (13-6)
상상력을 상징하는 요정은 시인을 상징하는 기사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기사는 요정의 매력에 이끌려 자기도취의 황홀경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은 요정의 "달콤한 신음소리"와 "요정 노래"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이들의 속성 역시 상상력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는 애매모호한 것이며, 항상 아름답기 때문에 인간이 그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사이렌(Siren)과 같은 마력을 지녔다. 또한 요정이 기사에게 제공하는 음식도 그를 황홀경으로 이끄는 원인이 되는데, 왈도프(Waldoff)는 기사의 황홀경에로의 몰입은 음식과 음료에 의한 잔치 이미지로 상징화되어 더욱 강화되어 있다고 한다(93). 이 음식은 『성녀 애그니스제 전야』(The Eve of St. Agnes)에서 포피로가 매들린에게 제공하는 "만나와 대추"를 상기시키기도 하고, 상상력의 구현을 상징적으로 노래한 코울리지의 「쿠블라 칸」의 마지막 환상의 순간에 등장하는 음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상상이나 천상의 영역에나 존재하는 음식들로 인간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요정이 먹는 천상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기사가 요정을 말에 태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시적 영감의 상징인 천마, 페가수스를 상징한다는 면에서 매우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기사가 요정의 신비한 야성적인 눈에 네 번 키스하여 감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절정은 상상력의 절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상상의 세계에 사는 천상적 존재인 요정이 기사를 데리고 가는 요정 동굴은 상상력 발휘의 절정이 된다.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지는 기사와 요정의 결합은 필멸과 불멸이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인 시인은 항상 상상의 세계에 머물 수만은 없다. 현실의 세계에 사는 그는 영감에 의해 시를 탄생시킬 수 있는 상상력을 절정으로 이끈 후에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사가 요정과의 결합 후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황홀한 경험의 장소였던 요정 동굴은 차가운 산허리로 변모된다. 기사의 요정 동굴의 경험은 천상의 범주에 영원히 그를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로 하여금 육신의 사슬에 매이도록 한 것이다. 그의 요정 동굴에서의 잠은 "역설적인 휴식"으로(Perkins 185), 휴식 후에 정반대의 감정을 맛볼 뿐 아니라 모든 상황을 정반대로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결국 「우수에 부치는 송시」("Ode on Melancholy")에서처럼, 아이러니칼하게도 기사의 상상의 기쁨의 신전에서는 우수가 그녀의 유일한 성전을 갖게 된다. 상상속의 아름다운 숙녀는 기사에게 경험의 초월적인 기쁨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신음만을 제공한다. 이러한 결과는 그들이 융합을 이루기 전에 요정이 슬프게 울고 한숨 쉼으로서 예시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요정은 이미 그들의 결합이 일시적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요정 동굴로 나를 데려갔어요.
거기서 그녀는 울면서 가슴 아프게 한숨지었어요.
She took me to her elfin grot
And there she wept and sighed full sore, (29-30).
상상력을 통해 천상의 영역에서 기쁨을 경험했듯이 이제 기사는 현실세계로의 하강을 경험한다. 이것은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환상의 세계에서 언제까지나 상상력을 보유할 수 없는 인간은 지상에서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요정은 고의적으로 요정 동굴에서 기사를 버렸다는 것을 입증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키르케처럼 잔인하게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라고 볼 수 없다. 요정이 기사를 저버렸다기보다는 인간인 기사 자신이 더 이상 비전을 보유할 수 없는 무능력 때문에 이 연인들의 결합이 깨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사가 인간이라는 점이 요정과의 결합을 영속시킬 수 없는 요인이 되며, 그 자신의 필멸의 속성이 그를 세속의 세계로 소환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자비심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기사가 속하는 지상적인 삶은 천상의 양식인 만나 등이 거부되고 죽음의 파리함으로 감싸인 영적인 고립 상태로 나타남으로써 요정과의 경험과 대조적이다. 기사가 꿈속에서 만나는 왕과 군주, 무사들은 어둠 속에서 죽음처럼 안색이 창백하고, 굶주린 입술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정이 자기들을 마술에 빠지게 하여 그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요정 동굴의 경험을 소유한 필멸의 존재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있다고 생각되는 왕과 군주들, 무사들일지라도 인간은 천상적인 삶과 대조되어 지상적인 삶 속에서 이처럼 초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이런 악몽에서 깨어난 기사는 자신이 달콤했던 요정 동굴에서 차단되어 차가운 산허리에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사는 자신의 위치를 정립할 수 없는 참담한 상태가 되어, 시의 서두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제시된다.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비전을 소유하지 못한 채 상상력의 하강을 마친 기사는 왕과 군주들, 무사들,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송시」("Ode to a Nightingale")의 화자, 그리고 『라미아』(Lamia)의 리시어스처럼 외롭고, 창백하며,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이 꿈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데서도 이것이 상상력의 다른 말임을 암시해 주는데, 키츠 자신이 상상력을 "아담의 꿈"에 비유하여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이 시는 삶의 우울성에 대한 보편성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키츠는 삶이란 본질적으로 우울하며, 삶의 비극성은 삶이 변전무상하며 유한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인지한다. 그는 우리가 웃는 동안에도 어떤 고통의 씨가 심어지고, 그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서 갑자기 우리가 따야만 하는 독약의 열매를 맺기 때문에 세상은 기쁨의 시간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Letters 281)고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슬픔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과정으로 인지할 수도 있다. 키츠는 이 시에서 모든 인간은 기사와 다름없다고 인식하는데, 이것을 기사와 요정의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통하여 매우 보편타당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그는 기사가 요정을 만나 그녀의 "달콤한 신음소리"와 "요정 노래"에 자꾸 매혹되어 "요정 동굴"에서 그녀와 결합을 이루는 경험을 통해 삶의 우울성의 근원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 기사가 왜 요정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미스테리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인간의 우울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키츠는 이 시를 통하여 육신적인 삶, 그 자체가 인간의 우울성의 근간이 됨을 신비스럽게 표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기사는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제시되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모습의 원인, 즉 인간의 우울성의 근원을 묻기 위해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호수, 새, 꽃과 같은 자연물들도 이러한 우울성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사가 매우 수심에 차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음은 꽃의 이미지를 통하여 잘 나타난다.
고뇌와 열병의 이슬에 젖은
백합 한 송이를 그대 이마에서,
또한 너무나 빨리 시들어 가는,
지는 장미 한 송이를 그대 볼에서 나는 본다네.
I see a lily on thy brow
With anguish moist and fever dew,
And on thy cheeks a fading rose
Fast withereth too. (9-12)
여기서 백합과 장미가 기사의 표정에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필멸을 소유한 꽃의 조락은 기사의 유한성을 의미한다. 어느 의미에서 기사는 죽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필멸의 인간이기에 생존 자체는 죽음을 향한 여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키츠는 이 부분을 처음에 "나는 그대의 이마에서 죽음의 장미를 보았고, 그대의 볼에서 죽음의 시들어 가는 장미를 본다네"(I see death's lily on thy brow. . . And on thy cheeks death's fading rose)라고 썼다고 한다(Wasserman 77).
그런데 이러한 원인은 그가 아름다운 요정을 만난 경험에서 유래되는데, 요정에 대한 기사의 묘사의 모호함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신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요정은 기사의 이상적인 여성이고, 그녀와의 요정 동굴에서의 경험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우울성의 근원이 되며 인간이 벗을 수 없는 슬픔의 굴레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사가 요정과 키스하고 그녀와 결합한 후에 잠에 빠지게 되고,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에서 그는 안색이 창백한 왕과 군주, 그리고 역시 안색이 창백한 무사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죽음처럼 창백하고 굶주린 입술을 가진 왕과 군주, 그리고 무사들은 삶의 우울성을 경험한 필멸의 존재들임을 나타낸다. 또한 이미 경험을 한 이들이 기사에게 "무자비한 미녀가 그대를 홀렸구나!"(La belle dame sans merci/Hath thee in thrall)라고 소리치는 것은 미경험의 세계에 있었던 젊은 기사가 그들과 똑같은 우울성을 경험했으므로 그들과 같은 세계의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꿈에서 깨어난 기사는 그들과 같이 죽음처럼 창백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기사도 우울성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필멸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죽음의 행위인 바, 인생은 무덤에로의 끊임없는 여정인 것이다. 그리고 죽음과 같은 육신적 삶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한 모든 인간에게 우울성을 줄 뿐이다. 기사에게 소리치는 사람들이 권력을 쥔 왕과 군주들 그리고 세속의 악과 싸우는 무사들이라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시」에서 고대의 황제와 시골 농부, 낯선 나라에서 고향 그리워하던 루쓰가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듣고 우울성으로 공감하는 것 역시 인간에게 내재한 원초적 슬픔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사가 이런 악몽에서 갑자기 깨어나자 그는 자신이 차가운 산허리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을 대표하는 기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이라는 요정을 만남으로서 생긴 결과이다. 기사는 요정과 진정으로 결합하기 위하여 헛되게 정력을 낭비한 나머지 삶의 우울성을 얻게 된 것이고, 그가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자기의 위치를 정립할 수 없는 참담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울성에 대한 기사의 경험은 바로 기사가 고독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헤매는 원인이 되는데, 이 시의 마지막 연이 첫째 연과 연결됨으로써 이 시에 일종의 순환 운동을 부여하면서 기사가 간직한 우울성을 부각시켜 준다. 이러한 구조의 순환성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전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생명에 대한 우울성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미 두 가지 측면이 공존하고 있는 가을을 통해서도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시가 설화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을 가졌으며, 대대로 구전되는 특성을 지닌 발라드 형식을 취한다는 점도 순환성과 연결된다. 이는 우주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순환적으로 되풀이된다는 것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로써 「무자비한 미녀」는 외양과 실재라는 측면에서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통해 구조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겉보기와 속보기라는 이중적인 장치 속에 안치되어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키츠의 수수께끼 전략이라는 이중 구조와 더불어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실재적으로는 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하나의 해석만이 아닌 중층적이거나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Ⅴ. 나오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무자비한 미녀」는 키츠의 의도적인 수수께끼 전략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시적 기교와 더불어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통해 외양과 실재라는 측면에서 중층적이거나 다층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키츠는 이 시를 통해 의도적인 수수께끼 전략을 기교적으로 기저로 깔아놓고 있으며, 질문과 답변, 재담, 애매 모호성, 독자 유도, 원형적 구도, 역설과 모순 등의 다양한 시적 기교와 더불어 적당히 감추기와 드러내기를 통해 내용에 있어서도 외양과 실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수수께끼 전략을 통해 전체 시를 하나의 완전한 원형의 형태로 구성하며, 동시에 수수께끼의 기본 속성인 의문과 답변의 동기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외양과 실재라는 측면을 탐구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수수께끼의 한 속성이라 할 수 있는 대조와 모순과 역설의 기교를 통해 시의 구조를 내용에 밀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에는, 거기서 나아가 기사와 요정이라는 남자와 여자의 다른 관점을 통해 서로 다른 외양과 실재의 차이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시의 속보기에 주력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그는 이것을 더 발전시켜 나아가 내용상에 있어서도 겉으로 드러난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한 꺼풀 벗기면 볼 수 있는 중층적이거나 다층적인 의미들을 그 속에 곁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점들이 외양과 실재라는 측면에서 시의 구조, 언어, 내용이 모두 잘 지은 하나의 건축물처럼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관련을 견고히 맺도록 서로 돕는 가운데 존재하도록 하고 있다. 말하자면 키츠는 의도적인 계획 아래 이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조직하고 배치하여 서로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 형상을 구축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그가 삶을 양면적으로 보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할 수 있다. 어차피 삶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양면의 동전처럼 외양과 진실, 이성과 감정, 현실과 환상 같은 상충되는 요소들의 통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삶을 통하여 서로 상반되는 특징들이 서로 활발하게 반응하는 것을 예리하게 감지했고, 이것을 그의 시적 공간으로 끌어들여 상상력으로 응축시키는 시적 역량을 발휘했던 것이다.
또한 동시에 이러한 모든 것은, 키츠가 비록 낭만주의 시인이고 그의 시에 낭만주의 시의 특성인 현실도피나 우수,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 등이 주제적으로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다른 낭만시인들과 비교해볼 때 기교적으로는 비교적 현대적이고 몰개성적인 시를 썼다는 점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낭만시인들이 갖는 몽상적이고 자연적인 특성의 범주에 머물며 개성과 자아가 표출되는 주관적인 시를 쓰면서도, 시의 제재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시적 기교들을 구사하여 시인 자신을 숨김으로써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비개성적인 시를 쓰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키츠는 시인의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진술의 시가 아닌, 삶의 여러 상황이 극화되어 제시되는 객관적인 시를 지향했던 낭만주의 시대의 현대적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충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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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ppearance and Reality in John Keats's "La Belle Dame sans Merci"
Yoon, Myung-Ok
John Keats shows dark hints of multiple meanings by his intentional enigmatic strategy in the point of appearance and reality in "La Belle Dame sans Merci." He arouses the reader's curiosity at first and then leads to the quest and penetrates its mystery. Therefore we can see the characteristics of a riddle like a puzzle game, question-and-answer, and hide-and seek, which gives the poem its rich suggestive overtones. The unknown narrator asks and knight-at-arms gives answers to it, which signifies that there is a secret between appearance and reality in the poem. It becomes a motive which makes his readers quest by activating one's intelligent imagination while reading it. Also he uses figurative description, oxymoron, and paradox to fulfill it..
Therefore, we have to read the lines of his poetry, not as it seems to appear, but to catch the reality hiding inside it. The difference of appearance and reality is clearly shown by the relations of the knight-at-arms and a fairy's child. They are not only so different, but they also don't understand each other like the man from Mars and the woman from Venus, even though they seem to engage in idealistic and romantic love. While the knight-at-arms represents the world of man -- center-oriented tendency, reason, and actual life, the fairy's child embodies the world of woman -- margin-oriented tendency, emotion, and ideal heaven. Also he reveals teleological and vertical thought while she reveals ateleological and horizontal thought through their gifts and deeds for each other. That's why the knight-at-arms belongs to the realm of the cold hillside, while the fairy's child belongs to the realm of oxymoronic elfin grot in the poem, even though the cold hillside, a physically mutable world, is the place which could encompass the elfin grot by which means the knight-at-arms's visionary insight might be momentarily achieved. We also have to pay attention to that fairy's child as described by the knight-at-arms. Therefore they misunderstand each other even as there seems to be the appearance of understanding. He accepts her reaction wrongly without any right judgement on it and he just thinks of her in his own way, as he chooses.
This poem, therefore, creates double or multiple meanings like the embodiment of imagination or the universality of melancholy in life, which as a device, it becomes the poet's purposeful intention. Especially in the point of appearance and reality, it can be asserted through hide-and-seek using many kinds of poetic devices. This result can be confirmed by the fact that Keats regards life as a double or multiple sided thing in many ways. Life as a whole is made up of oxymoronic factors of appearance and reality, reason and feeling, reality and illusion like the head and tail of a coin to Keats. All these prove Keats was a romantic and modern poet even though he lived in the romantic period because he tried to write objective and impersonal poetry while he wrote subjective poetry which reveals the poet's self and personality.
Key words: Appearance, Reality, Enigmatic Strategy, Multiple Meanings, Quest
http://www.saehaneng.com/data/papers/nka_journal_2005_47_1_03_yoonmyungok.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