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너무도 안타까워...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서 원통보전을 포함한 절 일원이 현재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복구된 것이지만, 예로부터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주요 전각인 것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양주지밀기낙산사사적(襄州地密記洛山寺事跡)」에서 보듯이 신라시대 의상스님이 관음굴에서 관음대성을 친견하고 수정(水精)을 건네 받은 뒤 관음의 계시로 흙으로 빚은 관음상을 관음전에 봉안하면서 낙산사를 창건했는데, 관음전은 곧 원통보전의 다른 이름이므로 낙산사 창건부터 원통보전이 주된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건이후 858년(헌안왕 2)에는 사굴산파의 개산조(開山祖)인 범일(梵日, 810∼889)스님이 이곳에서 정취보살(正趣菩薩)을 친견한 뒤 그 모습을 상(像)으로 만들어 불전에 봉안했는데, 아마도 관음보살상과 함께 봉안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려시대에 몽고군의 침략으로 관음상이 훼손되었으나 얼마 안 있어 고려의 명유(名儒)인 이규보 등이 새롭게 관음상의 복장을 조성하기도 했으니, 역시 원통전이 주요 봉안 전각이었을 듯하다
원통보전 내에는 건칠관세음보살상을 독존(獨尊)으로 봉안하였고, 2003년 2월 3일 보물 제 1362호로 지정되었고 후불탱화로 아미타극락회도가 걸렸다. 그밖에 관음상 주위로는 오른쪽에 신중탱화(1959년)와 동종(銅鐘), 사진본으로 된 의상대사 진영 등 근년에 조성된 성보가 있다.
보타전은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요 우리 나라의 대표적 관음도량임을 상징하는 전각으로서, 1991년 7월 짓기 시작해서 1993년 4월 10일에 완공했다. 규모는 앞면5칸, 옆면3칸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안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천수관음(千手觀音)·성관음(聖觀音)·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마두관음(馬頭觀音)·준제관음(准堤觀音)·불공견색관음 등 7관음상과 32응신상 천오백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앞면 중앙에 천수관음을 비롯해서 좌우로 6관음, 그리고 뒤쪽으로 천오백관음상이 있다.
천수관음은 입상이며, 나머지 6관음은 좌상이다. 낙산사 천수관음은 32관음신상으로도 불려지는데, 그 뒤쪽으로는 목각 후불탱이 조성되었다. 보타전 안에는 그밖에 동종과 금고(金鼓)가 있다. 전각 외부 벽화는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낙산사 보타전과
대웅전과, 여러 전각들과 홍예문이 불에 타서 소실되고
7층 석탑만 잿더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기막힌 사진을
방금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불길에 휩싸여 목조건물이 삽시간에 재가 된 광경, 그 사진을 감히 여기 옮겨놓진 못 하겠군요.
육이오 전쟁 때에 소실된 것을 1953년에 다시 세웠다는데, 52년만에 다시 재로 돌아갔습니다.
저 또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몇 년 전 찾았던 낙산사 모습을 되새겨보며
낙산사 사이트에 가서 보타전 서 있던 모습 옮겨다놓습니다.
불생불멸...
삼계에 생기는 것도 멸하는 것도 없으니
다시 우뚝 선 모습 보게 될 날 기다리며
이곳 지켜오신 분들의 가슴 아픔을 함께 나눕니다.
한밤중 일어난 산불로 황망히 피난한 양양 주민들도
얼른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무사히 집으로 복귀하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