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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판 ‘예인들의 삶’ 한눈에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1. 15. 12:48
웃음을 판 ‘예인들의 삶’ 한눈에


기생. 비록 술자리에서 웃음을 파는 직업이지만 상류층 남성들을 상대하느라 높은 수준의 지식과 재능을 가졌던 예인들이다. 춤과 노래·악기·시서화·학식뿐 아니라 지조·의기까지 갖춘 이들도 많았다. 특히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복식은 일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만큼 ‘패션리더’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기생조합을 거치면서 기생은 성과 관련된 이미지만으로 왜곡·폄훼돼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 실정이다.

(주)서울옥션이 13일부터 한 달 간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센터 전시장에서 여는 ‘기생전’은 기생을 단독주제로 한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사진엽서와 고미술품, 규방용품, 여성장신구, 고증 한복에 현대미술품과 영상까지 동원해 기생과 그 문화의 일면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기생 관련 사진엽서 500여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자료수집가 이돈수씨의 소장품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엽서와 원판사진들로 당시 시대적 배경과 기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쉬운 것은 일본인들이 제작한 것이어서 일제침략의 당위성 같은 것이 기생의 모습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10년대 프랑스 선교사 문제만 신부가 사용한 엽서에는 아랫부분에 ‘경성(京城)의 기생과 여종’이라는 사진 설명이 영어와 일본어로 적혀있다. 여종을 데리고 국화꽃 앞에서 포즈를 취한 두루마기 차림의 기생은 이목구비가 또렷하며 총기 있어 보이는 계란형 얼굴의 미인이다.

기생의 서화작품으로는 평양 명기 소교여사(小橋女史)가 그린 묵죽도와 죽향(竹香)이 그린 묵란도가 나온다. 죽향은 당대 평양의 초일류 기생으로 꼽힌 인물이다. 묵죽의 대가인 자하(紫霞) 신위가 죽향의 ‘묵죽첩’에 제시를 쓰고, 추사(秋史) 김정희도 칠언시 두 수를 희증(희贈)했다는 것이다.

난이 그려진 기생의 치마폭도 처음 소개된다. 치마폭은 조선 후기 어느 선비가 아름다운 기녀를 위해 헌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초상화가 권오창씨가 그려내는 기생 초상들도 볼거리다.

금은의 수식과 능라의 의복을 허용한 조선시대 기생의 의상이 이번 전시에서 재현된다. 19세기에 이르면 저고리가 극도로 짧아져 도련밑으로 가느다란 흰치마 허리가 보일 정도였고, 치마 엉덩이는 풍성하게 부풀린 것이 유행이었다. 한복연구가 김혜순씨가 전통복식연구가 유희경씨의 고증을 통해 장옷에서 젖가리개, 속속곳까지 제작, 전시한다.

성행위를 묘사한 동경(거울)을 비롯해 노리개·비녀·뒤꽂이 등 장신구와 신라 토기부터 조선 청화백자까지 여성 화장구의 변천사도 함께 보여준다.

기생의 이미지를 현대미술의 소재로 포착한 시도도 흥미롭다. 사진작가 배준성씨의 작품은 사진과 회화의 결합을 시도했다. 기생방에서 촬영한 알몸의 여성 사진 위에 김혜순씨 기생한복을 그려넣은 작품의 이름은 ‘화가의 옷-기생Ⅰ’이다. 그러니까 비닐로 된 옷을 들추면 누드가 드러난다. 또 윤석남씨는 조선기생 이매창과 황진이를 여성선각자의 이미지로 상징화한 설치조각 작품을 보여준다.

전시기획자 김효선씨는 “기생이란 존재를 시각적으로 구체화시켜보는 것은 피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지적 능력과 예술적 능력, 진선미의 덕목을 추구하며 수 백년 간 존재했던 한국의 아름다운 이미지로 조명해보려 했다”고 말했다. (02)395-0331

〈이용 미술전문기자 ly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