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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중동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돈이(사진 오른쪽)씨가 그림을 그려가며 이슬람과 미국의 대립 구도를 설명하는 모습을 이일영씨가 지켜 보고 있다. |
- 고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보면서 중동과의 협상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 전돈이(이하 돈이) : 정부의 협상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한 채 일본인들이 풀려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풀려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전공자)가 보기에는 중동 전문가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협상단이 현지로 출국했다. 게다가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현지를 찾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일본의 전례와 상황이 틀리지만, 일본은 외교부장관까지 친히 가지 않았었나. 그리고 일본은 현지 이슬람단체를 통한 적극적인 협상을 했다.
▲ 김한지(이하 한지) : 일본은 50~60년대부터 ‘JAMES’라는 중동학회를 운영해 왔다. 중동지역에서 연구와 조사도 하고 유적발굴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동지역의 경제성에만 눈독을 들여온 게 사실 아닌가. 실제로 중동지역은 우리나라 보다 일본에 대해 더 친근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양성된 학자들과 중동 전문가들을 가진 일본은 중동지역의 ‘인맥’도 더불어 가졌다. 이번 사태와 같이 긴급한 상황에서 현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구색 맞추기식 협상단 파견 아니었나.
이라크는 중세 봉건제 국가를 떠올리면 된다. 15개 이상의 부족이 모여 대부족장을 둔 체제인 셈이다. 후세인이 대부족장 개념이었고, 그는 부족장 각각에게 자치권을 주는 대신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던 거다. 각 부족은 부족장을 신처럼 떠받는다. 그렇다면 팔루자 지역의 부족장(이맘, 이슬람 단체장)을 공략하는 협상책이었으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 이일영(이하 일영) : 70~80년대는 중동붐이 일었다. 79년에는 아랍어과 정원도 200명이 넘었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정부의 지원도, 기업의 관심도 없었던 곳이 중동 지역이다. 또 90년대 중반 외무고시 과목에서 아랍어가 빠지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중동지역 대사관 중에 수단 대사를 빼고 아랍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안다. 중동은 단지 돈벌이를 위한 지역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중동지역이 단지 돈 벌 곳, 돈 버는 대상이라는 인식도 큰 문제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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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한국외국어대측이 마련한 분향소에서 안병만 총장이 분향을 하며 고 김선일씨의 명복을 빌고 있다. |
- 김씨 피살 후 이라크 파병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 돈이 : 어차피 파병을 할 수 밖에 없다면 미군의 부탁을 받아서 가는 듯한 인상은 없앴으면 한다. UN결의안이 얼마 전에 통과되지 않았나. 군복에 태극마크가 아닌 UN평화유지군 마크만을 달고 파병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파병이 예정된 지역에만 잘해주고 있지 않나. 한 개 부족에만 잘 해준다고 이라크 전체 의식이 바뀌겠나. 파병을 한 뒤에는 더더욱 이라크와의 관계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중동전체를 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
▲ 일영 : 우리 군도 부단한 노력을 해야한다. UN평화유지군으로 가더라도 이라크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인식이 좋은 쪽으로 쉽게 전환되진 않을 것이다. 그만큼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 미국과 이슬람권의 관계, 그 속에서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 한지 : 미국과 이슬람 사이에서 한국은 다각적인 외교를 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슬람과 이라크만 보지 말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슬람권을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 부시 대통령 당선 이후 네오콘에 의한 정권과 정책 결정이 심화된 것은 이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네오콘은 기독교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이는 유대인과 밀접한 유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이슬람 원리주의와 상극이고 충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이 싸움에서 한 쪽 편을 들 이유가 없지 않나. 유럽과 아시아, 중동 등을 큰 틀에서 보고 편향된 외교를 수정했으면 좋겠다.
▲ 일영 :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근본적인 대립각의 출발이다. 미국이 이스라엘만 돕는 건 누구든 다 알고 있지 않나.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다. 이라크 내 저항세력이 민간인을 납치하고 살해한 것은 분명 지탄 받아야 마땅하지만, 우리의 광복군과 독립을 위한 노력 등 지난 시절도 돌아보면서 이라크를 봐야 한다. 일반 국민들도 '이왕 이렇게 됐으니 파병을 해서 이라크를 다 쓸어버리자'는 식의 생각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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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학생들이 유가족들에게 보내질 예정인 위로 엽서를 쓰고 있다. |
- 김씨 사건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른 원인도 있다고 생각하나. ▲ 돈이 : 언론도 큰 원인을 제공했다고 본다. 특종에 치우친 건지 고 김선일씨의 신상에 대해 너무 상세히 밝혔다고 생각한다. 이번 납치 사건 관련해서 학교 교수님들도 언론에 관련 발언을 할 때 고 김씨의 이전 신학교 이력과 장래 목사가 꿈인 것에 대해서는 내보내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언론은 고 김씨 어머니의 입을 빌어 "우리 아들이 목사되는 게 꿈이었는데"라고까지 그대로 내보냈다.
▲ 한지 : 왜 합동예배 드리는 장면까지 뉴스로 나와야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 일영 : 김씨가 미군 납품 업체인 회사에서 일한 점도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납치단체는 유심히 지켜봤을 것이고 그들의 눈에 김씨는 이미 미군과 어느 정도 동격체로 보였을 거다. 그리고 사태는 이내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진행되버렸다.
아직까지도 안타깝꼬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도 한국어를 잘 하는 외국인을 보면 더 잘해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아랍어를 잘 하면서 문화까지 이해하던 사람을 그렇게 대했다는 것일 뿐이다.
 아랍어과 동문들, 선배 못다 이룬 꿈 우리가 이루겠다  | | 김선일 씨 사망 후 한국외대에 마련된 빈소에는 하루종일 학교 관계자들과 학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미디어다음 김준진 기자 | 미디어다음 / 김진경 기자
“아랍어를 공부하고 이라크에서 꿈을 이루고자 했던 선배의 꿈을 이제 우리가 잇겠습니다.”
김선일 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한국외대, 부산외대 등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비보를 전해들은 동문들의 애도의 물결이 줄을 잇고 있다.
다음 카페 ‘한국외대 아랍어과 04학번’(http://cafe.daum.net/04hufsarab)에 다음이름 '레몬에이드'님은 “새벽에 친구 문자 받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지금까지 뉴스만 봤다”며 “아랍어를 전공한다는 사실이 오늘은 부끄럽고 싫다”는 글을 남겼다. 'AK-47'님은 “이라크에서 살해된 사람은 김선일씨 한 명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 국민 모두는 한번 목을 베인 셈”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부산외대 아랍어과 동문카페’(http://cafe.daum.net/busanarab) ‘태권V’님은 “미 제국주의에 짓밟힌 아랍 민족주의라는 거창한 정치 논리까지 얘기 하고 싶진 않다”면서도 “우리나라도 원리주의 이슬람 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추가 파병 되는 젊은이들 중에는 가족 부양을 위해 지원한 동문들도 있다고 들었다”며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후짱’님은 “아랍어과에 입학하면서 선교의 꿈을 품었지만, 김선일 씨 비보를 전해 듣고 마음이 흔들린다”면서도 “선배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겠다”는 글을 남겼다.
부산외대 아랍어과 박인봉(25) 씨는 “명분과 원칙을 중시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민간인을 살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정확한 절차에 따라 협상이 진행됐더라면 민간인 살해의 참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들 학교 홈페이지에는 중동지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선후배들의 안부를 묻는 글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다. |